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웃으며 말했다.
"다시 볼 때는 웃는 얼굴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칸자키 대장."
맞아, 그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의족에 목발을 짚은 몸을 비웃거나 하지도 않고, 언제나처럼의 따뜻하고 다정한 눈길을 향하고.
그리고, 그 모습은 이내 바람에 흩날리듯 허공으로──
"기다려, 이세!"
타카히로는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괘, 괜찮으쩨요, 소장님?"
"…에?"
그곳은 타카히로의 집무실 안이었다. 남남부제도 제2563호 섬, 모엣코 컴퍼니의 호위 메이드 최종 훈련 공정 시험 연락 해상 훈련소 ── 모엣코지마.
그것이 현재 칸자키 타카히로가 있는 장소였다. 타카히로는 안경을 고쳐쓰고, 걱정스러운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는 비서, 키리시마 카오리를 향해 쓴웃음을 지었다.
타카히로는 몸을 의자에 던져넣으며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잠깐 졸았을 뿐이야. 신경쓰지 말도록."
"흐──응."
"뭐야, 그 의심스러운 눈초리."
키리시마는 타카히로의 태연자약한 태도에 서류철을 가슴에 안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별로 추궁할 생각은 없쩌요. 조는 건 자유지만, 업무만 제때 끝내주시면 OK에요."
"흥. 그렇잖아도 오늘치 분량은 미리 다 끝내뒀어. 순찰도 재때 돌았다구?"
타카히로의 담담한 대답에 키리시마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수상해요. 평소의 소장님답지 않은 업무처리효율을 보여주고 있쩌요."
"수상하긴 뭐가. 휴식시간을 좀 일찍 가지고 싶었을 뿐이야."
"…무리하지 마쩨요. 소장님."
"하아? 난 무리따위 안해."
"리니아 때문이지요?"
"……."
키리시마가 툭 건드리듯 던진 말에, 타카히로는 아무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래, 모든 것은 리니아를 위해서. 바보같은 고물 안드로이드가 다시 웃는 모습을 모두가 기대하고 있으니까, 이렇게도 모두들 필사적이다.
타카히로는 리니아를 고칠 부품을 구하는 것이 어려워지자 PIXIES의 옛 전우들, 지금은 컴퍼니의 손에 닿지 않는 곳에 흩어져 있을 6천(天)에게 연락을 취했다.
큰 희망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은 지푸라기나마 잡아 보는 수밖에 없었기에, 타카히로는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 외에는 다른 행동을 취할 수 없었다.
현재의 불편한 몸으로는 전력은 커녕 짐이 될 뿐인 자신이 직접 움직이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그런 무력한 타카히로의 마음을 파고든 것은 지독한 불안감.
아침부터 일에 파고든것도 사실은 그 불안감을 잊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것은 사라지지 않았고 과도한 업무에 지쳐 쓰러지듯 잠든 타카히로의 꿈에 등장하기까지 했다.
타카히로는 꿈에 등장한 남자를 기억에서 끄집어냈다.
픽시즈의 넘버 2. 그리고 인간 최강의 칭호를 가진 엑스퍼트 에이전트──
신풍의 이세.
과격하고 엄청난 바람의 힘을 휘둘러 전장에서는 악몽처럼 여겨지는 이세였지만, 평소에는 조용히 독서를 즐기며 개를 사랑하는 평범한 청년일 뿐이었다.
겉모습만 봐서는 도저히 지옥같은 픽시즈의 훈련을 통과해 살아남은 에이전트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타카히로는 그것이 우울함과 절망감을 감추기 위해 억지로 웃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장담할수 없었다.
그런 그는, 가장 마지막에 타카히로의 곁을 떠나며 한마디를 남겼다.
'다시 볼 때는 웃는 얼굴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컴퍼니는 타카히로를 포함한 픽시즈의 멤버들이 다시 모이는 상황을 결코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다시 얼굴을 볼 수 있는 확률은 극히 드물겠지만, 이세는 그렇게 말하고 떠나갔다.
10년 가까이 잊혀졌던 기억이, 왜 이제야 되살아난걸까.
이세라면 컴퍼니의 사병들 정도는 1개 사단이 쳐들어와도 혼자 몸으로 능히 맞설 수 있을테고, 숙청부대 앨리스 인 체인스가 움직인다고 해도 쉽지 않을 터인데.
타카히로는 가닥이 잡히지 않는 아련한 불안감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타카히로를 바라보며, 키리시마는 말없이 집무실을 나왔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짧게 중얼거렸다.
"소장님…."
그녀는 창문 너머로 보이는 푸른 하늘을 응시했다.
새털구름이 하늘에 뿌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하얗고 먼 구름의 아래 어딘가──
하얀 집이 한 채 있었다.
안락의자에, 안경을 쓰고 양복을 입은 청년 한명이 평온한 표정으로 책을 읽고 있었다.
오른손에는 책이 들려 있고, 왼손으로는 의자 옆에서 하품을 하는 개를 사랑스럽게 쓰다듬었다.
책을 중반쯤 읽었을 때, 그는 책을 덮고 일어섰다.
그리고, 개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리고는 나직하게 말했다.
"존, 바람이 심해질 것 같네요. 집에 들어가 있으세요."
늙은 개는 커다란 눈망울을 굴리며 끙끙댔지만, 청년이 아무말 없이 미소를 짓자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기 전, 청년을 한번 돌아보았다. 마치, 그 모습을 잊지 않겠다는 듯이.
청년은, 집 안으로 완전히 사라지자 마당으로 걸어갔다.
그는 활짝 웃으며 손을 펼쳤다.
"어서오세요. 오랜만이네요. 레이군."
그러자, 저편의 그늘에서 연보라빛 머리칼의 청년이 조용하게 나타났다. 두 눈을 감고 있는 그 청년은, 조용하게 선언했다.
"나는 당신을 죽이러 왔어. 신풍의 이세."
"네.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건 여유인가. 이세."
"에? 아니요. 여유라니 무슨 말입니까. 레이군, NIN의 사람이지요? 그런 상대에게 여유를 부릴 배짱은 없어요."
"……대답할 의무는 없어."
"뭐어, 좋아요. 해후의 인사는 이 정도로 해둘까요."
바람의 방향이 바뀐다. 레이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그러고보니 정장도 차려입고 있었군. 미리 알고 있었던 건가."
"──그 말에 대해선 레이군의 대답을 그대로 돌려드리죠."
이세는 읽던 책을 공중에 집어던졌다.
그리고, 허공을 부유하듯 잠시 공중에 떠 있던 그 책은.
"저도 대답할 의무는 없습니다."
갈기갈기 찢어졌다.
"큿! 잔재주를!"
그 흩날리는 종이 다발은 잠시나마 레이의 시야를 가렸고, 이세는 상승기류를 일으켜 바람에 뛰어오를 수 있었다.
이세는 씁슬하게 웃으며 생각했다.
'그 책, 더 이상 읽지 못하겠네요…….'
그런 이세의 모습을, 날카로운 눈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것은 아주 찰나에 느껴진, 미약한 상실감.
타카히로는 집무실을 나와서, 창문 너머의 텅 빈 하늘을 바라보았다.
"……."
증오스러운 하늘로 퍼져가는 석양.
악몽과도 같은 붉은 날을 생각하게 하는 그 하늘은, 오늘따라 유난히 더 붉게만 느껴졌다.
"칸자키 대장을 행복하게 해 주세요."
"……당신."
"'우리'는 대장을 좋아했거든요. 우리들중 가장 무뚝뚝했던 유키카제도, 대장의 표정이 약간만 풀어지면 시선이 그쪽으로 갔던거 알아요? 선글라스였으니까 눈치챈 사람은 많지 않았겠지만."
"……동생에 대한 일은 묻지 않아?"
"이스즈 말인가요. 하지만 굳이 이미 죽어버린 동생을 언급해서 당신과 나의 상처를 후벼파고 싶은 생각은 없거든요. 이 세상은 산 사람과 살아갈 사람의 것……쿨럭!"
이세는 피를 토했다. 안경알은 박살이 난지 오래. 칠흑에 꿰뚫린 몸은 서서히 식어가고 있었다.
인간 최강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던 사내는, 그렇게 조용히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픽시즈의 누구도, 당신만큼 대장을 생각했던 사람은 없었을 거에요.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모든 일조차도, 순전히 대장을 위한 것 아니에요?"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이세는 싱긋 웃어보였다.
레이는 그것을 볼 수 없었다.
그는 빛을 잃은지 오래였으니까.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잘 느낄 수 있었고, 그것은 정말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대장을, 웃게 만들어 주세요."
이세는 자신과 동생과 동료들을 무참히 살해한 레이를 비방하지 않았다.
속으로는 정말 증오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그리고 ── 정말로 순수하게 타카히로를 걱정하고 있다.
그 마음을 느낀 레이는 입술을 깨물고,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들어 주세요."
레이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지독한 고요 가운데, 이세는 조용히 숨을 들이키고, 말을 뱉었다.
"…존을 부탁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이세는 고개를 떨구었지만, 레이는 존이 누구인지 묻지 않았다. 이내, 저쪽에서 미친듯이 달려오는 늙은 개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개는 헉헉거리면서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주인의 몸을 핥았다. 하지만 주인은 평온한 표정으로 깨어날 수 없는 잠에 빠진 상태였다.
끙끙거리던 개는, 무디어진 이빨을 들이대고 레이를 향해 거칠게 짖어댔다.
레이는 잠시 그 쪽을 노려보았다.
개가 도약하기 위해서 몸을 움츠린 순간,
퍽.
허무한 소리와 함께, 한때 살아있는 개였던 피와 고깃덩어리가 공중에 흩날렸다.
레이는 조용히 손을 내렸다.
피가 눈가에 튀어서 흘러내린다.
뜨거운 감촉이 볼을 따라 흐른다.
레이는 그것을 닦아내지 않았다.
진짜 눈물은 흘려줄 수 없다.
그러니, 적어도 이 진득한 피내음을 잊지는 말자.
레이는 조용히 몸을 들렸다. 뒤에선 칠흑이 일어나 이세의 몸을 삼켜들어갔다.
레이는 걸어가며 꿈을 꾸었다.
행복하지만 있을 수 없는 미래.
자신과 리니아와 타카히로가 행복하게 모여사는 꿈을.
언제나 같은 내용의 꿈이었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이세는 강아지를 안고 와서 그들에게 선물로 건넸다.
'──우리집 존이 낳았습니다. 잘 키워주세요. 대장.'
그리고 꿈에서 깨어난다.
레이는 웃었다.
그야말로 바보 같다.
죽은 사람과 죽을 사람들만 잔뜩 등장하는 꿈이다.
행복을 거머쥐어야 할 것은 타카히로와 리니아, 둘이면 충분하다.
그렇지만, 공허하게 흘러나오는 중얼거림을 막을 수는 없었다.
"꿈이 아니라면 좋을텐데."
그 말에, 무겁게 가라앉았던 바람이 풀린다.
광포한 싸움이 일어난 장소를 휘감고 있던 바람의 속박이 풀려, 하늘로 날아오른다.
까마득하게 펼쳐진 하늘에 걸린 구름의 조각을 향해, 바람은 움직여갔다.
그것은 시간을 새기고──
이루지 못할 누군가의 꿈을 새긴다. 목록으로 돌아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