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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교차점(境界交叉點)

05/07/08

태그 : CROSS†CHANNAL, 공의 경계, 타이치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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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교차점(境界交叉點) - C†C X 공의 경계 크로스오버 팬픽션.


† KUROS †

정확히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산에 올랐다.

아니, 어쩌면 이미 올라가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 부분은 기억이 워낙 애매하기 때문에.

잠시 모두와 떨어져서 고독을 즐기고 싶었다.
이 쿠로스 타이치, 아무래도 뒤늦은 사춘기 진입인가 (쓴웃음)

…하지만 이 순간 어디선가 숲 저편에서 요코가 지켜보고 있겠지.
가란다고 가랄 녀석도 아니고, 시끄럽게만 하지 않는다면 상관없으려나.

시원한 바람이 이마를 스쳐 지나갔다.
이 추악한 용모에도, 자연은 아낌없이 은혜를 베푸는구나.

자연 만세.
미사토 선배의 맹한 목소리를 흉내내며 팔을 번쩍 들고 소리를 질렀다.

자연 만─세.
저편에서 메아리가 돌아온다.
친절한 자연씨.

"후─아."

하품을 한다. 찌는듯한 태양빛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새어 들어오는 이 상쾌한
오후. 이대로 잠을 자버릴까, 생각했는데 누군가 산길을 뛰어 올라오고 있었다.

"아하하하, 나잡아 봐요~"

왠지 온몸에서 두드러기가 생길 것 같은 억지 목소리였다.
나는 한기마저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순간.
아아, 갑자기 좋은 향기가.

품안으로 달려든 의문의 여성 A.

나는 머리가 핑 돌았다.
D컵.
명칭을 의문의 여성 D(컵)로 수정했다.

삐- 삐- 하는 빨간불이 머리에서 울었다.
오랜만의 빵빵한 가슴인가!! (군침)

망상파워 풀가동.
하지만 나는 동시에 그것에 스톱을 걸었다.
안돼.

지금의 이 쿠로스 타이치는 어디까지나 젠틀한 건전지향 사춘기 소년이라는 설정
이다.
일단 나는 갑자기 내 얼굴을 보고 놀라지 않도록 한쪽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이신지?"

요즘 보기 힘든 흰색의 원피스 (우오, 햇빛이 조금만 더 강하면 비칠 정도로 얇아!)
를 입은 그 의문의 여성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듯 했다.

"죄, 죄송합니다! 돌에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굽실거리며 사과한다. 빨개진 얼굴이 상당히 귀엽다. 나는 재빨리 그녀에 대한 정
보를 머릿속에 입력해 넣고 평가를 내렸다. A정도의 클래스. 상당히 상위다! 20세
이상의 연상처럼 보이긴 했지만, 연상에게는 연상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 그걸로
OK.

그런데 떨어지질 않는다. 안돼. 더이상 붙게 하면 나의 이성 게이지가 바닥을 드러
낸다.

"아아, 뭐 괜찮습니다만."

하지만 이성 게이지는 이미 바닥을 드러냈는지 손은 저절로 그녀의 엉덩이로.
왼손으로 오른손을 친다. 바른손이 바른 짓을 안하고 뭐하는 짓이야.

"저기, 좀 무겁습니다만."

"…에에, 그럼 실례했습니다."

그녀는 쭈뼛쭈뼛하게 뒤로 물러났다.
그 순간, 나는 머리털이 쭈뼛 서는 소리를 들었다.

"하하하, 어디있어, 자기야?"

느끼한 청년의 목소리. 우웩.
그리고 머릿속에 본능적으로 예감 하나가 스친다.

왠지 기분나쁜 예감이었지만, 그건 분명 틀리지 않을 듯한 직감이기도 했다.

"여기 있었군 마이 허~니."

아니나다를까. 이건 분명하다.
나는 손을 들고 외쳤다.

"정지!"

남자는 의아한 표정과 함께 멈추었다.
나는 예의 완장을 팔에 차고 그에게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바보 커플… 반대?"

"그렇습니다. 바보커플 반대 위원회의 쿠로스 타이치라고 합니다. 공인이 보는
앞에서,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염장질은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나는 되도록 상큼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뭔가 반박하려는 듯 했지만, 나는 그의 입에 요코가 싸준
점심 도시락인 주먹밥을 쑤셔넣었다.

욱욱.
예스. 침묵은 금입니다.
금덩어리를 물었군요, 당신은.

"에, 저기…"

뒤에서 여성이 나직하게 말했다. 나는 '웃는 얼굴에 침 뱉으랴' 라는 속담을 떠올
리며 미소를 유지했다.

"음? 당신도 먹고 싶어요?"

"네에. 하나 정도라면."

나의 입가에는 검은 미소.

"…먹여드릴까요?"

"아뇨, 괜찮아요."

얼굴에 수줍은 웃음.
이 시츄에이선은 상당한 수준이다!
만족한다.

"사양할거 없습니다."

주춤주춤 물러서는 아가씨의 입에 상냥하게 주먹밥을 넣어드렸다.
조금 반항하는 듯 했지만 나중에는 입을 크게 벌린다.

"맛있죠?"

나는 코끝을 문지르며 웃었다.
어라, 묘한 냄새가.
착각이려나.

여자는 말이 더이상 없다.
너무 맛있는 것인지, 먹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다.

"바보 커플 박멸. 주먹밥도 나누어줬으니 좋은 일 한건가."

나는 조용히 일어서며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었다.

"다음부터는 공공장소에서 염장질 자제해주시길. 두 사람 모두."

주먹밥 먹는데 정신이 팔린 두 사람은 대답이 없다.
나는 몸을 돌려 요코가 있을지도 모르는 숲 속에서 또 잠시 쉬기로 했다.
기분좋은 숲내음이 코를 간지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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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gger †

"하악, 하악, 하악"

그녀의 이름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녀는 지금, 도망치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 이런 결과가 되었는지 그녀는 잘 모
른다.
결과로서 그녀는 도망치고 있을 뿐이다.

산속으로 도망쳤다.
추격은 여전하다.
자신이 살아날 확률은 지극히 희박하다.

산을 정신없이 오르다가, 그녀는 산 중턱에 태평하게 누워있는 소년을 발견했다.
교복을 입은 그 소년은 염색으로서도 보기 힘든 순백의 머리칼을 지닌, 이질적인
외모였지만 지금의 그녀에게는 아무래도 좋았다.

"저기, 도, 도와주세요!"

거의 무작정, 반쯤은 착란 상태로 의지해 버린다.
소년은 질문했다.

"무슨 일이신지?"

그녀는 순간 공포를 느꼈다.
지금까지 받아오던 죽음의 공포보다 더욱 큰 것이었다.
눈앞의 소년에게는 '표정' 이 없었다.

세간에서 말해지는 무표정과는 달랐다.
지금 그녀의 눈앞에 있는 얼굴은, 모든 감정이 박탈된 무기질의, 이형의, 그 무엇
인가.

그녀는 비명을 지르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소년에겐 웃음이 지어진다.

그녀는 그것만으로도 안심해 버린다.

"살인마가 쫓아와요!"

사실, 그녀는 이 소년에게 애초부터 기대같은 건 거의 하지 않았다.
용감하게 맞서서 싸워 주는 것 따위는.

적어도, 같이 죽어줄 수는 있겠지, 정도를 바랬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전혀 뜻밖이었다.

"아아, 뭐 괜찮습니다만."

태연자약한 얼굴. 그녀의 말을 농담이라고 생각해 버린 걸까?

소년은 다시 말했다.

"저기, 좀 무겁습니다만."

"…예."

그녀는 변변한 대꾸도 못하고 압력에 눌려 밀려났다.
그 순간, 머리털이 쭈뼛 서는 소리가 들려왔다.

"죽여버린다!"

지금까지 자신을 쫓아오던 남자. 확고한 살기가 담긴 목소리로 소리치고 있었다.
그녀는 도망치려 했지만, 다리가 풀려버렸기에 더이상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어
주저앉고 말았다.

"여기 있었나. 귀찮은 년."

추악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남자는 다가왔다.
순간 소년이 손을 들고 외쳤다.

"정지!"

그녀는 숨이 막혔다.
뭐야, 저 소년은. 남자에게 들린 저 시퍼런 칼이 보이지 않는건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

"…뭐야?"

"그렇습니다. 바보커플 반대 위원회의 쿠로스 타이치라고 합니다. 공인이 보는
앞에서,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염장질은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미친자식아냐?"

남자는 목격자를 죽여버리기로 했다. 칼이 높이 들어올려진다.
여자는 눈을 감으려고 했다.

불가해한 이해의 영역, 그 찰나의 찰나.

소년은 자신의 옆에 있던 보따리에 손을 대고 풀었다.
거기서 나온 것은 날카롭게 갈아진 군용 나이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매일 그래왔다는 것처럼, 동작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소년의 나이프는 남자의 입속을 꿰뚫었다.

피가 쫙, 하고 지면에 흩뿌려진다. 따뜻한 무언가가, 그녀의 얼굴까지 날아왔다.
공포가 전신을 달린다.

이것은 방금전까지 느끼던 공포와 전혀 틀린 것이었다.
그녀는 지금 차라리 일찍 저 남자에게 죽어버렸으면, 하고 절실히 후회하고 있었다.
이성은 급속도로 마비된다.

"…으, 아."

오히려, 공포가 그녀를 움직이게 했다.

입을 가린 채로, 그녀는 일어선다. 하지만 소년이 돌아보는 것이 더 빨랐다.

"음? 당신도 먹고 싶어요?"

본래라면 통하지 않을 채널. 광인과 일반인의 의사가, 공포로 인해 교차하며, 본능
적인 부분에서 교감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부정하며 뒤로 물러났다.

"아뇨, 전혀, 전혀, 전혀, 전혀, 전혀. 실례합니다. 실례합니다. 실례합니다. 실례합
니다. 실례합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잘 모르는채, 그녀는 뒷걸음질 칠 뿐이었다.

"사양할 것 없습니다."

해맑게 웃는 소년. 그 얼굴에는, 방금전에 소년이 죽인 남자의 피가 묻어 있었다.
괴물. 괴물. 괴물. 괴물. 괴물.

그녀의 머릿속에 같은 단어가 메아리치고 있었다.
목이 막힌다. 심장이 뛰지 않는다.
저 소년은, 아니,소년이 아니다. 저 '것'은. 광인의 범주마저 벗어난, 이미 인간과는
다른──

──사고가 정지한다.
경악과 고통으로 그녀의 입은 크게 벌어진다.

소년의 나이프는 그녀의 입을 지나 목을 깨끗하게 관통했다.

"맛있죠?"

목 안을 채운 금속성 물체 때문에, 그녀는 대답할 수 없었다. 끔찍한 기분이었다.
이건 살인이라고 부를수조차 없는 행위였다.
차라리 저 살인마 남자에게 강간당하고 죽어버리는 것이 훨씬 더 인간적인 죽음이
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을 죽여야 살인이 성립된다.
하지만 이 소년에게 인간은 인간이 아니었다.

그녀는 지독한 아쉬움을 느끼며 무너졌다.

"바보 커플 박멸. 주먹밥도 나누어줬으니 좋은 일 한건가."

소년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귓전을 때린다.
그녀였던 생물체는 곧 물체가 되어버렸다.

"다음부터는 공공장소에서 염장질 자제해주시길. 두 사람 모두."

웃으며 시체들에게 손을 흔든 소년은, 유유자적한 발걸음으로 숲을 향했다.
짙은 혈향(血香)이 바람을 타고 흩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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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ROSS POINT †

더위가 한창인 여름의 중반.
토우코에게서 최근 연쇄살인마가 돌아다닌다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여성만을 대상으로, 강간후 난도질이라는, 지극히 상투적이라면 상투적인 수준의
그저 그런 녀석이다.

내 눈에 뜨이면 혹시 모르지만, 굳이 찾아다니고픈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경찰 정도에서 해결해줄 문제인 것이다.

나는 한적하게 소파에 늘어져서 다리를 흔들거리며 미키야가 올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철컥.

사무실의 문이 열리고, 미키야가 들어왔다.

"후우─ 힘들었다."

"늦었어."

나는 약간의 푸념을 담아 그렇게 중얼거렸다.
미키야는 난감한듯 머리를 긁었다.

"미안미안. 어쩌다보니 다이스케 형 일까지 잔뜩 도와주게 되어버려서."

경찰의 일인가.

"최근의 연쇄살인마 사건 알지? 그 사건 범인이 발견되었어."

"…흥미없어."

나는 여전히 소파에서 다리를 흔들거린다.

"의외네, 시키. 이런데 관심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를 뭘로 보는거야."

다시 감정을 약간 담아 투덜거린다. 뭐, 미키야는 민감하니까 이러니저러니 말해도
다 눈치채고 있을지도.

"그게, 이미 죽어서 발견되었거든."

"───하아"

어쩔 수 없다. 무심코 관심이 동해버린다. 미키야는 외투를 옷걸이에 걸며 이야기
를 계속했다.

"으음. 피해자가 죽인 건 절대 아니야. 피해자 역시 살해당했으니까."

"…피해자가 범인을 죽이고 자살했다던가, 혹은 그 반대의 경우는?"

자신도 모르게 궁금한 것을 물어버린다.

"전혀 없음. 제3자야. 범인이 먼저 죽고, 피해자는 그 후에. 흉기도 범인의 것과는
전혀 틀린 것이었고. 둘 다 입으로부터 목까지 나이프로 관통당해서 죽었어. 단 일
격으로."

"─흐응."

"피해자 여성 같은 경우는 부검 결과 죽기 전에 공포로 인해 엄청난 쇼크를 받은
것 같았다나. 괴물이라도 본 걸까."

괴물.
이상자.
…아니, 뭔가 다르다.
나는, 급작스러운 충동을 느껴버렸다. 거의 거역할 수 없는 본능에 가까운 충동
이었다.

"그 발견 장소는 어디야?"

지금까지 주욱 설명해오던 미키야는, 그 반동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장소를 대
답해 버렸다.
그 단순한 모습에, 나는 피식 웃어버렸다.
그런 점이 미키야의 매력이다.

"…잠깐, 시키!"

하지만 나는 미키야가 말리기도 전에, 가죽점퍼를 챙겨입고 토우코의 맨션을
나왔다.
──품속의 나이프를 확인하고, 나는 미키야가 말해준 장소를 향해 움직이기로
결심했다.

왜 이끌리는 것인지, 나도 잘 설명할수는 없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있어서는 안될 무언가'가 일어나버린 듯한 기분이 든다.

─교차해버렸다.
──이미 멈출 수 없는 일.

───하지만 나라면───

어쩌면 내 입가에는, 가벼운 웃음이 띄워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근원에 가까운 충동이 나를 움직인다.

그렇게, 료우기 시키(兩儀式)는 움직였다.


† CROSS †

료우기 시키는 그대로 토우코의 맨션을 나와 미키야가 가르쳐준 장소로 향한다.
시간은 아직 무더운 낮.
택시에서 내린 그녀는, 날듯이 뛰어 산을 올랐다. 충동이 방향을 결정하고, 의지
가 속력을 낸다. 지금의 그녀에겐 거칠 것이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도달한 점에서, 시키는 '그'를 발견했다.
바람에 나부끼는 백발. 피로 뒤덮인 흰 교복을 입은 소년이 손을 흔들고 있다. 그
손에는 거꾸로 쥔 나이프가 들려 있었다. 그 지독한 이질감에 시키는 고개를 끄덕
였다.
그래. 저것이 바로 날 움직인 '이유'.
그렇다면 망설일 필요는 없다.

"아아. 어여쁜 아가씨."

백발의 소년, 쿠로스 타이치는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시키의 얼굴이 굳어졌다.
소매 아래 에서, 나이프가 미끄러진다. 한발짝 한발짝 앞으로 나아간다.
두근.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린다. 시키의 공허한 마음 속에 뭔가가 채워지고 있었다.
입가에, 스르륵 미소가 떠오른다. 이것이 바로,
──생의 실감.

시키는 허리를 숙이고 타이치와의 단거리를 단숨에 주파했다. '선'이, '점'이, 그녀
의 눈에는 선명하게 보이고 있었다. 석양을 등진 채 시키는 타이치의 몸을 대각선
으로 내리그었다.

"자짜고짜 터치라니… 외계인 아가씨. 지구인과의 첫번째 조우를 축하드립니다."

타이치는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그녀의 나이프는 타이치가 교차하여 내민 2개의
단도에 정확하게 막혀 있었다. 그녀는 당황하지 않고 판단했다.
힘에 있어서는 이 남자가 우위다. 고로, 대치상태로 가면 불리해지기 때문에 그 전
에 무기를 파괴한다.

거기까지 생각한 시키는 나이프를 미끄러트리며 타이치가 가진 나이프의 '선'을
보고 노렸다. 그러나 타이치가 순식간에 단도에서 힘을 빼버리는 바람에, 시키의
나이프는 엉뚱한 아래로 미끄러졌고, 그 틈을 타서 타이치는 시키의 복부에 발차
기를 꽂아넣었다.

허리가 휘청, 하고 휘어질 정도의 강렬한 통증이 퍼져나갔다. 시키는 뒤로 미끄
러지면서 한번 굴러서 충격을 줄이고. 신중하게 공격의 기회를 노렸다.

"타이치 가라데킥이다아아아아─아. 아. 아. 이거이거. 굉장히 과격한 터칭이구만.
통성명도 하기전에 스킨쉽은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외계인 아가씨."

료우기 시키는 햇빛이 쏟아지는 산 능선에서 타이치를 응시했다. 정확히는 그의
주변을.
시리도록 푸르게 물든 그녀의 눈동자에는 강렬한 '일그러짐' 이 잡히고 있었다.
그녀는 나이프를 돌려 역수로 쥐었다. 심호흡을 한다. 상대에게 시선을 맞춘다.

"일단은 통성명? 내 이름은 이거에요. 이거."

정말로 기쁜듯이 웃으며, 타이치는 칼날을 교차시켜 챙챙 소리가 나게 부딪혔다.
시키는 아무 말도 대꾸하지 않았다.

"교차하니까, Cross한다고 하잖습니까. 지구공용어로 십자가란 뜻이기도 하죠.
각도를 틀리면 X로 착각할수도 있지만…"

"─이 세계에서 외계인은 너뿐이다."

시키는 짧게, 단정적으로 내리꽂았다. 하지만 타이치는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이기 때문에, 합쳐서 쿠로스 타이치입니다. 취미는 친구 만들기. 특기는 성희
롱이죠."

타이치는 웃으며 칼을 빙글빙글 돌렸다. 그리고 뭔가 말을 하려다가, 입을 연채
그대로 굳었다.

"───어떻게 된거야. 네 '말'이 나에게 닿는다. 채널이, 채널은, 분명, 분명 그
───"

타이치의 흰 교복의 어깨가, 피로 물든다. 사실은 , 아까 시키가 공격 했을 때
이미 베였다. 내색하지 않던 것 뿐이다. 타이치 모드 II는 충격을 받았다.

"두둥."

시키의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타이치는 경악했다.

"효과음을 입으로 내는 건 반칙이야!"

"…만화적 상상력이라는 녀석일까. 미키야에게 배웠어."

그 말을 끝으로, 시키는 손을 앞으로 뿌렸다. 타이치는 선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손목에 스냅을 줘서 칼을 한바퀴 회전시켰고, 시키가 던진 작은 돌멩이는
튕겨나갔다.

"기껏 주파수가 맞았는데. 외계인 아가씨와의 협상결렬. 평화는 어렵구나."

"…료우기 시키다."

시키는 타이치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와, 목줄기를 노렸다. 타이치가 떠드는데
신경이 팔린 순간, 신속의 도약, 타이치는 전혀 눈치챌 수 없었다. '선명한 선'이
눈 앞에서……

"…그랬구나! 료우기 시키쨩~☆ 알았습니다. 이것은 시바무라 현상이군요!"

찰나의 순간, 시키는 손을 늦추고 말았다. 아마 들어본적 없는 호칭에 대한 당혹
감이 상당부분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그 짧은 빈틈이, 치명적인 결과를 낳게 되
었다. 타이치는 몸을 있는힘을 다해 틀어 나이프를 쥔 시키의 손목을 틀어쥐어 내
렸다. 그리고 다른 손에 들린 나이프를 높게 들어올렸다.

"경동맥-길로틴."

무감각한 기술명. 사실 되는대로 이미지를 조합한 것에 불과한 단어들이다. 타이
치의 현재 의태수준은 최악에 가까워져 있었다.

핏.
뭔가가 날아가 떨어진다. 피가 튄다. 타이치의 나이프가 손목과 함께 잘려져 날아
갔다. 시키가 자신의 손목을 잡은 타이치의 손에 쥐어져 있던 나이프를 비틀어 빼
앗아 휘둘렀기 때문이다. 의아한 눈빛으로 그것을 바라보는 타이치를 향해, 시키는
주저없이 '점'으로 나이프의 날끝을 들이밀었다.

"…특별한 '눈'을 가진건 너만이 아냐. 시키쨩."

타이치가 눈을 굳게 감아버린다. 시키는 자포자기라 생각하고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다음 순간.

핏빛처럼 번들거리는 붉은 눈이 그녀를 응시했다.

기계음과 같이 흘러나오는, 조립이 풀린 표정으로 발해지는 '선언'.

"쿠로스 타이치는, 료우기 시키를 '관측' 한다."

그리고 순식간에 시키의 몸은 표적을 잃고 돌았다. 곧 균형을 잡을 수 있었지만,
그녀는 곧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뭐야. 이건."

분명 태양이 비치는 한낮이었던 주위는, 지금 석양의 무렵이었다. 무엇보다, 그녀가
지금 서있는 장소는 여전히 숲이긴 했지만, 방금전까지 있던 곳과는 완전히 틀렸다.
료우기는 자신이 보았던 그 붉은 눈에 대해 잠시 되짚어 보았다. 어떤 종류의 마안
(魔眼)일까?
단지 본 것 만으로, 상대를 공간이동 시켜버리는 편리한 마안 따위는 이 세상에
있을 리는 없다.
그건 차라리 마법의 수준에 가까운 것이다.

고유결계에 말려든걸까. 시키는 그 쪽이 신빙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엔 그 어디에도 '경계'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찰카닥.
시키는 위험을 느꼈고, 그대로 몸을 날렸다. 근처의 나무에 박힌 길다란 뭔가가, 부
르르 떨었다. '볼트' 라 불리우는 석궁의 화살이었다. 그것을 확인하고, 시키는 이를
악물었다. 석궁의 재장전이 끝나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소리로 방향은 짐작이 가능하다. 시키는 소리의 발원지를 향해 등을 돌리는 대신에
똑바로 달려나갔다. 도망치면 점점 더 불리해질 뿐이었다.

"빙고~"

타이치의 유쾌한 목소리가 남긴 잔향이 시키의 귀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녀는 달
리면서 모든 신경을 청각에 집중했다. 타이밍을 놓치면, 죽는다.
그녀라고 해도 조준하는 상대가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의 저격을 피할 신기는 없었다.
다만, 직감에 모든 것을 맡길 뿐.

탈칵.
아주 짧은 격철음. 그 소리와 함께 팽팽한 석궁에 재여진 볼트가 공기의 벽을 꿰뚫고
료우기 시키의 미간을 향해 일말의 오차도 없이 날아갔다.
하지만 시키는 그 소리를 들었고, 그것을 감지한 순간 몸은 의식보다도 더 빨리 반응
했다.
시키는 허리를 굽히지는 않았다. 그 순간 시야는 좁아지고 표적을 놓칠 가능성도 있
었기에.
그녀는 발을 앞으로 쭉 내밀며 몸 자체를 가라앉혔다. 그리고 앞으로 거침없이 미끄
러졌다.

나무 뒤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타이치는 경악하며 소리쳤다.

"나이스 태클!"

말 그대로 깨끗한 태클 자세였다. 시키는 옷이 쓸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풀밭
을 미끄러져 내려오더니 속도를 유지한 채로 손을 튕겨 날듯이 뛰어올랐다. 나무 뒤
의 표적, 쿠로스 타이치를 향해.

물론 타이치는 그 공격을 한가하게 맞아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석궁을
재장전할 시간도 없었기에, 허공에서 두자루의 단도를 번뜩이며 달려드는 시키를
향해 손에 든 석궁 자체를 집어던졌다.

"…소용없어."

물 흐르듯, 두 자루의 나이프를 가지고 석궁을 해체해 버리는 시키. 그녀는 우아한
착지 후에 맹렬하게 타이치를 향해 돌진했다.
이제 타이치와 시키 사이를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타이
치는 빙그레 웃어버렸다.

"소환."

탁, 하고 그의 발끝에서 길다란 물건이 날아올랐다. 그리고 숲의 어스름을 가르며
흰 빛이 호선을 그었다. 시키는 속도를 줄이며 몸을 급하게 뒤로 당겼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목을 스치고 지나간 그 물건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타이치
의 손에 들려있는 물건은 다름아닌 장검이었다.
타이치는 진지하게 검을 끌어올리며 생글거렸다.

"요도 하라키리마루. 0.3초내로 소환되는, 하라키리가의 저주받은 명검이야. 뭐,
유품이지만."

시키는 그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거리를 쟀다. 상대가 장검을 든 이상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지 않으면 위험했기 때문이다. 타이치는 그에 전혀 신경쓰지 않은
채 주절주절 말을 이어나갔다.

"아, 그러고보니 키리찡의 유품도 네가 박살내 버렸네. 요코의 유품은 네가 가
지고 있고."

시키는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자신이 들고 있던 타이치의 컴뱃 나이프를 들
어올렸다.
타이치는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거. 그거 말야."

"…흥."

시키는 손을 털어서 타이치의 발 앞에 그 나이프를 꽂았다. 하지만 타이치는 어
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시키쨩이 과격하게 내 손목을 날려버려서 말야. 한손으로 무기를 두개나 쥘 수
는 없다구."

시키는 그의 한쪽 팔을 향해 시선을 향했다. 대충 뭔가의 천으로 칭칭 감긴 했지
만, 그 출혈량은 상당했던 모양이었다. 검붉게 물든 천에선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
었다. 시키가 타이치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자, 그의 얼굴은 거의 그의 머리색 만
큼이나 새하얘져 있었다.
시키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품에 갈무리했던 단도의 칼집을 꺼냈다.

"…재미없군."

창백한 빛을 뿌리던 단도의 날이 칼집 속으로 갈무리된다. 시키는 상대에게서 살
의가 이미 사라졌고, 어차피 가만히 놔둔다 해도 곧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금방 파
악했다.
…싸워봤자, 의미는 없다.

"의미라면, 있어."

마치 그녀의 마음을 읽은 듯한 말에, 시키는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타이치는 웃는 표정을 풀지 않았다. 시키는 문득 그것이 하나의 무표정이
라는 생각을 했다.
억지로, 웃는 표정만을 짓는 얼굴. 사람들과 공감할 수 없는 감정을 단지 흉내내고
있을 뿐인 얼굴. 그 얼굴은 마치…

"시키쨩. 들어줄래? 내 얘기."

시키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완전히 방심한 채 숲 근처의 나무에 몸을
기대었고, 타이치는 검을 자신의 옆에 꽂아두었다. 타이치는 조용조용 이야기를
꺼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건, 그 만남이 어떤 것이라도 의미를 가져. 자신을 사랑해
주고, 필요로 해주고, 내가 살아있다는 실감을 채워주는 그런 사람과의 만남은 말할
바도 없지만. 그저 길가에서 옷깃만 스쳐 지나가는 사람과의 만남도 말야. 까마득하
게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그런 '접점'을 만들었다는 건, 엄청나게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시키는 말없이 타이치를 노려보았다. 타이치는 쑥쓰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잉. 그렇게 보면 부끄러워 시키쨩. 오늘밤은 무리라구~"
"……."

시키가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황급히 타이치가 손을 내저었다.

"아아, 농담이라구. 농담. 혹시 주변 사람들에게서 농담이 안 통하는 녀석이네, 란
말 자주 듣지 않아?"
"…전혀."

타이치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뭐, 시키쨩과의 만남은 정말 어이없는 조우였지만. 원래라면 교차해서는 안 되는
세계가 교차해 버려서 말야. 하필 이 타이치가 최악의 모드일 때 넘어와 버려서."
"관심없어."
"…매정하네."
"미키야가 걱정할거야. 돌아가야 해."

시키가 몸을 일으키자 타이치는 킥킥거렸다.

"좋은 울림인데. 그 이름."
"……흥."

휘적휘적, 시키는 코웃음치며 타이치를 뒤에 남겨두고 걸었다. 하지만 그녀는 걸
으면 걸을수록 위화감을 느껴야만 했다. 이곳은 자신이 올라왔던 산과 전혀 다른
공간이다.
경계가 있는 '결계'조차 아니다. 이곳은, 또 하나의 세계. 타이치가 말한, 교차된
'세계'의 일부란 말인가?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그녀의 등 뒤로, 타이치의 희미해져 가는 목소리가 들렸다.

"…죽고 죽이려는 관계로 만났지만, 이 만남 역시 의미가 있는 거라고 생각해. 어
차피 난 잊혀지겠지만, 만났다는 사실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시키는 몸을 돌렸다. 석양의 빛이 부드럽게 등 뒤를 감싸고 산 전체를 물들이는
중이었다.
타이치는 모든 표정을 지운 상태였다. 의태를 완전히 풀어버린 그 표정을 본 시키
는, 피식 웃음을 띄웠다.

"…뭐야. 시키쨩도 웃을 줄 아네."
"흥. 날 뭘로 본 거냐. 괴물."

타이치의 얼굴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것은 화를 내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자연
스러운 미소를 지어내려 억지로 용을 쓰는 중이었다. 결국 자신의 얼굴을 더듬거리
다 포기한 타이치는 고개를 푹 숙인채 중얼거렸다.

"낮가림이 심하지만, 알고보면 귀여운 여자아이."

시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타이치는 힘겹게 손을 부들부들 떨며 들어올렸다.

"거…기서 멈춰줘. 이젠 집에 갈 시간…이겠지?"

시키는 대꾸하지 않고 조용히 발걸음을 멈추었다. 타이치는 흐려지려는 시야를 바로
잡으며 하라키리마루의 손잡이에 기대어 일어섰다.

"난, 혼자여야 하는데."

타이치는 나직하게 그녀를 향해 중얼거렸다. 시키는 조용히 타이치를 응시할 뿐이
었다.

"…미미미 선배도, 키리찡도, 미키미키도, 토우코도, 요코도, 토모키도, 라바 멍청이
자식도, 왜 모두들 나를 걱정해 주는거야. 그렇게 곁에 있어줄 수 있는 거야. 왜."

타이치는 눈을 비볐다. 시각이 완전히 맛이 가 버리기 전에 '관측'해야 한다. 미친
듯이 파멸을 향해 달려가던 자신을 멈춰 준 사람을, 그 소중한 인연을 원래 있던 곳
으로 보내줘야만 한다. 그 순간에도 독백은 계속되었다.

"그래서 어느날 갑자기 짜증이 났어. 그래서 죽였지. 찢어죽이고, 목을 비틀어 죽
이고, 석궁에 꿰어 죽이고, 절벽에서 밀어 죽이고, 지하실에 가두고 굶겨 죽이고,
강간하고 죽여버렸어. 하지만…"

타이치는 눈을 붉게 물들였다. 그 순간, 그의 눈은 인간의 눈으로는 '관측'이 불가
능한 세계의 교차점을 관측할 수 있게 바뀌어 갔다.

"…사라지지 않아. 맺었던 관계의 교차점은 사라지지 않아. 모든 것이 다시 뱅글뱅글
돌아서 제자리. 이젠 이것도 지쳐 갔지만, 관성력 때문에 멈추는 것이 불가능했어. 요
코도 미키미키도 날 막을 수는 없었지. 그런데 넌."

석양의 빛이 산의 공터를 잠식했다. 타이치는 무겁게 느껴지는 손을 들어 흔들었다.

"날 멈춰줬어. 응. 이제 다시 시작할 수 있어. 지금까지의 타이치와 바이바이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거야. 뭐, 그래도 괴물이라는 사실은 변함없겠지만…"
"바보냐. 넌."
"…에?"
"울 수 있잖아. 너는. 제대로 괴물이 되기엔 멀었어."

타이치는 그때서야 깨달았다. 아까부터 흐려지던 시야가, 단지 피가 빠져나가서 느
껴지는 빈혈증상 때문이 아니라, 두 눈에 가득 고인 눈물 때문이라는 것을.

"아, 하하하… 언제부터지? 응?"

시키는 코웃음치며 대답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야. 멍청이."

타이치는 웃으며 대꾸했다.

"고마워."

그리고 시키는 순식간에 그의 모습을 시야에서 잃었다. 주변의 풍경은 어느 새 자신
이 올라왔던 산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석양의 빛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태양의
높이로 보건데, 그때로부터 채 한시간도 지나지 않은 것 같았다.

깊은 한숨을 내쉬고, 발을 내딛는다.
시키는 욱신거리는 몸을 끌고 조용히 산비탈을 걸어내려갔다. 이미 자신을 이끌었던
근원에 가까운 '충동'은 가라앉은 상태였다. 이미, 교차는 끝났다는 건가.
쿠로스 타이치라는 이름의 소년이 그 후에 어떻게 되었을 지, 그녀가 알 바는 아니
었다.

그와 그녀의 세계는 다르다. 애초에 만날 수 없는 관계였다.
그래도 그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기적과도 같은 만남이 있었다.
시키는 생각했다.

그 기적이 다시 한번 발휘되어, 그 소년에게 나름의 해피앤딩이 찾아올 수도 있지 않
을까, 하고.
하지만 시키는 곧 쓴웃음을 지었다.

남의 걱정을 해줄 처지가 아니다. 자신의 문제 쪽이, 더 심각하다.
미키야의 잔소리부터 피할 생각을 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녀는 허공에 걸린 빛나는 태양을 직시했다.

그리고 앞으로 걸어간다.

두 사람의 교차점은 거기에서 끝났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이야기는 멈추지 않고 달려나가고 있었다. 더 이상 이어질 일은 없
지만, 분명 자신만의 행복을 찾기 위한 그들의 노력은 멈추지 않는다.

쓰디쓴 댓가와, 그 해답을 맞교환하기 전까지 그들의 마음은 경계가 교차하는 점에
머무른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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