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황혼은 유난히 지독하다. 숨막힐 것 같은 단조로운 색감의 질주가 하늘을 내달리고, 그것은 삽시간에 하늘 전체를 잠식했다.
한숨마저 붉게 물들일 듯한 빛이 깔린 운동장의 한켠에, 두 사람의 검붉은 그림자가 벤치에 내려앉았다.
잔뜩 찌푸린 얼굴로, 하지만 어정쩡하게 그는 말했다.
"넌, 틀려먹었어."
"…계속 말해도 돼. 미나카미군."
벤치에 걸터앉아 어린아이처럼 발을 흔들던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나카미 유키토는 말을 이었다.
"세계란 건, 몇몇의 선각자들이 움직이는 게 아냐. 단지─"
"수많은 바보들이지. 미나카미군.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야. 어째서 눈을 뜨고 있는데도 장님인 척 해야 하는 걸까? 눈을 가린채로, 장님들의 세계에서 장님 흉내를 낸다고 해서 그들의 세계에 완전히 동화될 수 있다는 건 헛된 꿈에 불과해."
유키토는 벤치에 몸을 파묻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멋대로 내 말 잘라먹지 마. 바보타쿠 자식."
마미야 타쿠지는 해맑게 웃으며 머리를 숙였다.
"미안."
"네 말도 일리는 있다만, 어차피 우리가 걸어가야 할 시간이란 어둠 속이야. 변변찮은 시력 따위는 오히려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를 잡아채는 방해물이 될 확률이 높지. 애초부터, 이 세계에 놓여있는 이상, 장님과 우리는 별 차이가 없어."
"그 어둠은 거짓이란 이름의 어둠이야. 미나카미군. 난 스스로 진실이란 등을 밝혔고, 장님들이 눈을 뜨고 올바른 길을 가길 원했기에 그렇게 행동한 것 뿐이야."
유키토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자만하는군. 네가 진실이라 생각한 등불은 도깨비불에 불과하고, 넌 거기에 홀려서 사람들의 손에 절벽으로 떨어지는 이정표를 쥐어주었을 뿐이야."
"글쎄. 어둠에 패배하고 벽에 붙어서 겨우겨우 연명하기로 한 너에게 듣고 싶은 말은 아냐. 넌 분명 마지막 순간까지 스스로를 신뢰할 수 없을거야."
"─아아. 그래. 나는 패배자야. 세계에 굴복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믿어. 어떠한 전제도 없었기에 이 결론은 모순이 될 수 없지."
"논리적이네."
"그 말이 맞아. 나는 논리적인 패배자야. 거기서 굳이 세련미나 우아함까지 찾으려 들지는 않지. 그 사실 자체를 꾸미거나 왜곡할 생각은 전혀 없어. 하지만 넌 아냐. 패배자임에도 불구하고 넌 수용하지 않았어."
"……아냐."
"진정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건 너야. 넌 최후의 단 한 부분에서 너의 전제를 긍정하지 못했지. 결국 넌 또 하나의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린거야. 스케일이 좀 크긴 했지만."
마미야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멍한 눈으로 유키토를 응시했다.
그 눈은 약간 슬퍼 보였다.
"…남을 탓하고 싶진 않지만, 미나카미군… 아니, 유키토군. 너 때문이잖아. 내가 나를 완벽하게 긍정할 수 없었던 이유는."
유키토는 고개를 돌리며 쓰게 웃었다.
"핑계없는 무덤 없다고 했던가."
"미안해. 그래도 하소연해보고 싶었을 뿐이야. 그럼 이만 무덤으로 돌아갈 시간이군."
마미야는 초점 없는 눈동자로 노을이 진 하늘을 바라보더니, 그대로 뒤로 떨어졌다.
유키토는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헛수고였다.
벤치라고 생각했던 곳은 옥상의 끝이었다.
손은 닿지 않았고, 마미야는 칠흑의 어둠 속에 삼켜져 들어갔다.
검은 눈동자가 소년을 삼켰다.
삼키는 소리는 꽤나 인상적이었다.
털썩.
"날 동정해?"
속삭이듯 들려온 목소리에, 유키토는 사납게 대꾸했다.
"지랄같은 소리. 넌 좀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어."
"…유키토군다워."
이번엔 소녀의 목소리도 섞여 들렸지만, 유키토는 무시했다.
유키토가 벤치에서 몸을 일으켰을 때는, 오직 황혼이 짙게 깔린 하늘만이 그대로였다.
머리를 몇번 벅벅 긁은 유키토는 한탄하는 대신 주먹을 쥐고 하늘을 향해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가운데 손가락을 쭉 폈다.
그는 응시하고, 내뱉었다.
"엿이나 처먹어라. 빌어먹을 새끼야."
황혼은 물러났다. 목록으로 돌아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