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 소설 // 그림 // 링크 // 방명록


그녀는 울지 않는다

07/09/04

태그 : 후루데 리카, 호죠인 사토코

…….
조용히, 페이지를 넘긴다.

'──다. 나도 이제 한계다. 하루하루가 악몽과도 같은 나날이다. 지쳐간다. 언제까지 이런──'

페이지를 넘기는 손이 떨린다. 하지만, 멈출 수 없다.
가슴을 파고들어가는 고통.
이대로 이것을 계속 읽다가는 심장에 커다란 구멍이 뚫릴 듯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직시하지 않을 수 없다.

'──했다. 응. 괜찮아. 이제 아르바이트도 끝났어. 모든 것은 앞으로 잘 될거야. 이제 남은 것은 사토코가 기쁜 얼굴로 받아줄──'

"우, 우으으윽."

거기까지가, 사토코의 한계였다. 복받친 감정의 응어리가, 목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했다. 얼굴을 가려도, 흘러나오는 눈물은 막을 수가 없었다.

"우, 우아아아아."

안돼. 울지 않기로 약속했잖아. 스스로에게. 그렇게 굳게 다짐해서 잘 지켜왔잖아.
참아. 참을 수 있어. 나는…

"우와아아악! 우으윽! 크흑!"

울지는 않을거야. 하지만 이 감정은 어떤 식으로든 참기 힘들었다.
사토코는 바닥을 내리쳤다. 있는 힘껏 내리쳤다. 금새 주먹을 쥔 손은 고통에 벌겋게 변했다.
하지만 사토코는 이를 악문다.
이정도 고통 따위… 이정도 고통 따위……!

"오빠야가 받은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응, 정말로.
사토코는 외침을 그렇게 안으로 삭이며 속으로 자신을 마구마구 욕했다.

'나는 멍청이. 바보. 천치. 둔탱이에요─!'

그녀가 있는 곳은 그녀의 친구, 후루데 리카의 집 안.

사토시의 일기를 끌어안고, 사토코는 이를 악물었다.

호우죠 사토시가 실종되고 나서 처음으로 혼자 맞이하는 겨울밤.

검게 물든 하늘을 하얗게 수놓는 첫눈은, 저주스러울 정도로 쓰라린 추억을 남겨주고 있었다.

리카는 오늘밤 마을 회의에 나가서 다음날 아침 쯤에나 돌아오기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사토코의 손에 쥐여져 있는 것은, 며칠전 혼자 외출나가 옛 집에서 몰래 가져온 사토시의 일기장.
그 일기장에는 그동안 사토시가 얼마나 괴로운 마음으로 사토코를 돌보아 왔는지, 그 때문에 얼마나 상처입고 너덜너덜해져 왔는지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것은 잔학한 고문. 차라리 그녀를 향해 온 세상 저주의 말이 적혀 있는 편이 견디기 쉬웠으리라.

사토코가 그동안 단순한 반발심에서 일으켰던 모든 반항들이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믿고 따랐던 가족에게 얼마나 크나큰 상처가 되었는지 깨닫는 순간, 그녀의 [세계]는 산산히 부서져 나갔다.

"내가… 내가 강해지지 못해서… 내가 어린애처럼 굴었기 때문에… 오빠야가 돌아오지 않는 거야! 질려버린 거야!"

물론, 사토코 역시 알고 있다. 사토시는 자신 따위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다. 겨우 그런 이유로 사토코를 내팽겨치고 도망갈리가 없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을 자학하고 채찍질하지 않으면 도저히 그녀의 여린 정신이 견딜 수 없으리라.
사토코는 바닥을 내려치며 울음을 삼켰다. 하지만, 결코 그녀는 소리내어 엉엉 울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과의 약속.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사토시를 위한, 사토코의 굳은 결의.

"강해질 거야…!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울지 않아!"



* * *




히나미자와의 마을 회의가 3대가의 회합이었던 것도 옛날 이야기. 지금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소노자키 가문의 강력한 발언권을 확인하는 요식행위에 불과했고, 나, 현 후루데가의 당주 후루데 리카는 그 따분한 노인네들의 손길을 피해 몸이 안 좋다는 핑계를 대고 도망쳐 나왔다.
집에 돌아와 사토코와 놀며 지리한 겨울밤을 때울 생각이었지만, 창문 사이로 사토코의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나는 집에 들어가는 것을 잠시 보류할 수 밖에 없었다.

과연, 낮에 잠시 말도 없이 외출했던 건 저 일기를 가져오기 위해서였군.
나는 가슴 속으로 뜨겁게 치밀어 오르는 것을 가라앉히며 조용히 생각했다. 이것은 기백의 죽음을 경험한 나에게도 있어 생소한 광경. 본래라면 내가 사토코의 이 모습을 목격할 일은 없었을 테지만, 내가 부린 억지가 운명의 나침반을 조금 뒤틀어놓은 모양이다.
나는 사토코의 그 모습을 눈에 새기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아아. 넌 그렇게 될 거야."

긴 한숨이 내뱉어졌고, 그것은 하얗게 얼어붙어 공중으로 흩날렸다.
저도 모르게 쓴웃음이 지어진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나는 저 아이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하지."
"아, 아우아우! 그, 그렇지 않은거에요! 리카는 사토코를 위해 언제나 힘내고 있는거에요!"

사락사락 떨어지는 눈발속, 희미한 하뉴우의 모습을 응시하며 나는 조용히 방 창문으로부터 눈을 돌렸다.

"그래? 하지만, 이날 전까지 후루데 리카의 말은 호우죠 사토코에게 닿지 않았어. 노력과 결과는 별개의 문제이지. 뭐, 실제로도 나는 무력했고 말야."

장갑을 벗고 손바닥을 펼쳐 앞으로 내밀면, 눈송이들이 내 손에서 하나둘, 녹아내린다.
쌓이지 않는 눈. 물이 되어 흘러내리면 결코 잡을 수 없다.
왠지 한심한 기분이 되어, 주먹을 무심코 움켜쥐고 만다.

"사토시가 사라지기 전까지, 그 누가 사토코에게 있는 힘껏 성의를 다해 부딪혔지? 아무도 없어. 미온은 말만 앞서지 막상 가장 중요할때는 미적대는 얼간이야. 시온은 사토시에게 빠져서 제정신이 아니었고, 레나는 당시 자기 자신의 문제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상태였지. 게다가 다들 '남의 일이니까' 라는 막연한 거리감을 가지고 있었어. 그 상황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나 뿐이었는데도……!"

주먹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하뉴우가 슬픈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나는 수없는 실패에 질려버려서, 손도 대지 않고 포기해버리지. 아아. 그래. 하뉴우. 나는 한심한 녀석이야. 비록 늦었다고는 해도, 잘못된 방법이라고는 해도 ── 케이이치도, 레나도, 시온도 몇번이고 저 아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어. 하지만 나는 ……관조자인 체하며,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계가 언젠가 찾아올거라 안이하게 대처했지. 그런 내게, 그들을 어리석다며 조소할 자격이 있을까?"

볼을 타고 흐르는 것은 뜨거운 눈물.
나는 진정 어리석다. 악어의 눈물보다 더 같잖은, 마녀의 싸구려 눈물 따위가 그녀에게 무슨 위로가 될 수 있을까.
하지만, 나 역시 이 첫눈을 보며, 굳게 마음을 먹었다.

"아아. 그래. 그녀가 울지 않는다면, 내가 대신 울어주겠어."
"리카……."
"값싼 감정이라고 해도 좋아. 나는 저 아이의 소중한 결심을, 지켜줄거야."

사토코는 이내 눈물을 슥슥 닦고 사토시의 일기를 장롱 밑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두 볼을 손으로 찰싹 소리가 나게 두드린 다음, 자못 흥겨운 콧노래를 부르며 이불을 펼치기 시작했다. 밤을 새고 들어올 나를 위해 정성껏 이불을 펼치는 사토코. 방금전까지 이를 악물고 결의를 다지던 여자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모습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가슴 한 구석이 더욱 아려왔다.
그래. 적어도 오늘밤은, 그녀를 외롭게 두지 말자.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손을 올렸다.

탕탕.
창문의 유리가 가볍게 두드려지는 소리에, 사토코는 화들짝 놀라 창을 살폈다.
혹시 도둑이라도 든게 아닌가 걱정하는 걸까. 조심조심 다가오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실소를 머금었다.
어라, 그런데 더이상 다가오지 않고 뭔가 줄을 잡아당기고 있지 않아?

나는 그제서야, 이 집 여기저기에 사토코의 방범용 트랩이 설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앗차……!"
"리카, 조심하는 거에요! 아우아우!"
"이제와서 그런말 해봤자 늦었…"

촤아악.
머리 위에서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이 쏟아져, 온몸을 흠뻑 적셔왔다. 뒤이어 차마 필설로 형언하기 힘들 정도의 냉기가 엄습했다.

"츄, 츄운 거헤효! 아취! 아취!"
"시, 신 주제에, 무, 무슨 재채기, 엣취!"

그제서야 달달 떨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 사토코가 황급히 달려와 창문을 드르륵 열어제꼈다.

"리, 리카? 무슨 일이에요? 마을 회의로 늦는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미, 미이…… 꾀병으로 속이고 빠져나온 거에요…… 엣취!"
"에에? 그러면 안 되요, 리카! 아, 아무튼 빨리 집에 들어와요. 따뜻한 물 준비해 놓을테니까!"

당황해서 이불에 걸려 넘어지지만, 멋쩍은듯 웃고 욕실로 달려가는 사토코를 보며 나는 생긋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녀의 모습이 사라지자, 나는 천천히 현관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하뉴우는 아무리 나와 감각이 연결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신인 주제에 볼썽 사납게 연신 재채기를 해댔다. 나는 자못 즐거운 마음이 되어 가볍게 말했다.

"하뉴우."
"리카? …아, 아취!"
"그러니까 말야. 이번엔 저 아이를 울리게 하는 녀석도 용서하지 않기로 했어."
"……에?"
"만약 이번 세계에서 호우죠 텟페이가 나타난다면."

하뉴우의 발소리가 멈췄다.

"내가 죽인다."

더이상 재채기 소리도, 발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대신, 쥐어짜는 듯한 하뉴우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안돼요. 리카만은, 죄를 짊어지어선……."

가벼운 발걸음으로 현관 앞에 선다.

"내가 자살한게 몇번이지? 하뉴우."
"……아우……."
"내가 동료로 불렀던 이들에게 죽은것이 몇번이지? 하뉴우."
"……우우……."
"그리고 내가, 동료들을 상처입힌 건 몇……"
"그만해요! 리카!"

하뉴우의 절규를 한귀로 흘리며, 나는 현관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러니까, 죄 따위는 얼마든 짊어졌어. 아무리 너라도, 이번에 방해는 용서하지 않을거야."
"……."

더이상 대답은 없다.
나는 물에 젖은 겉옷과 목도리를 벗어들고 문을 열었다.
언제나 가까이 있었지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나의 작고 소중한 벗, 사토코를 위해서.

──나는, 최고의 미소를 준비했다.

목록으로 돌아간다

방명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