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메론 프로젝트 제 4 일 - 목수와 그의 아들. (소재:인형)
(2001/04/05 作)
바닷가의 이름없는 작은 마을. 태양은 껄떡대며 느릿느릿 수평선을 넘어갔고, 마
을에 한집 한집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황혼은 짧았다. 저녁이 찾아온 것이었
다.
쨍그랑!
요란한 유리 깨지는 소리. 그리고 외침.
"이리 돌아오지 못해!"
그에 대답하는 반항적인 목소리.
"쳇! 할아범! 웃기지 마!"
벌컥. 낡은 목공소의 문이 젖혀졌다. 머리가 흐트러지고 제법 골격이 잡힌 소년
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는 술 두병을 손에 쥐고, 입에는 담배까지 꼬나물고 있었
다. 전형적인 불량소년의 예였다.
차가운 바닷바람이 그의 살결에 와 닿았다. 그것은 그에게 기분나쁜 기억을 떠올
리게 했기 때문에, 몸을 움찔거렸다. 그러나 고함소리가 들리자 그는 본래의 자신
을 되찾고 욕설을 내뱉으며 골목길로 뛰어 사라졌다.
"돌아와! 이 망할 녀석!"
목공소 안쪽에서 다시 커다란 호통이 들려왔지만, 소년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탁탁탁.
발소리가 멀어져 가자 문 안쪽에서 백발의 목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얼굴은
세월의 풍파에 찌들려 온갖 주름과 상처로 뒤덮여 있었지만, 눈빛은 젊은이의 것
못지 않게 번뜩이며 빛을 발했다.
그는 낡은 안경을 매부리코에 신경질적으로 재차 걸쳤다. 그러고도 화가 안 풀리
는 듯, 왼손에 들고 있던 목공용 조각도로 문을 쾅쾅 찍어댔다. 그의 손은 부들부
들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
잠시후, 주위는 조용해졌다. 바람소리와 옆집에서 떠드는 소리, 그리고 노인이
가쁜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늙은 목수는 흰 콧수염을 파르르 떨며
뭔가를 말할듯이 입을 움찔거렸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작은 소리가 내뱉아져 나
온 것은 한참이나 후였다.
"못된 놈."
그는 목공소 문을 쾅 닫아걸었다. 덜컥하고 빗장이 내려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
렸다. 상당한 소음이었지만, 주위의 이웃들은 매일처럼 벌어지는 이런 다툼에 익
숙해져 있었기에 아무도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늙은 목수는 괜스레 투덜댔다.
희미한 달빛이 작업실 안으로 새어 들어왔다. 목수는 또 욕설을 퍼붓고 싶었지만
이미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어이구, 어이구 하며 한숨을 내지을 뿐,
더이상 불평조차 하지 못했다. 그때였다. 찌르르 찌르르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어깨로 무언가 뛰어올랐다.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으므로, 약한 모습
을 보이기 싫어 주위에서 굵은 나무를 하나 꺼내들었다. 그의 귓가로 찌르르 하는
기분좋은 소리와 함께 작은 말소리가 들려왔다.
"영감. 또 아들 때문에 걱정하는 건가?"
그는 신경질적으로 작업대 위에 나무토막을 쾅 하고 내려놓았다. 그는 안경을 치
켜올리며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조각도를 박아넣었다.
"웃기지 마. 식탁다리를 만드는 주문이 들어왔는데 구상이 안 떠올랐을 뿐이야."
그러자 마치 비웃는 듯한 찌르르 소리가 들려왔다.
"오호. 그 식탁은 아키 마운틴의 난쟁이들이 주문한 것이라도 되는가보군."
그제야 늙은 목수는 변명이 궁색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나무토막은 너무 굵고
일반적인 식탁다리에 쓰기론 너무나 짧았다. 그러나 그는 노인들이 흔히 그러듯이
특유의 고집을 부려댔다.
"그래, 난쟁이들이 어젯밤 떼로 몰려와서 주문했지.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식탁다리를 이틀 내로 만들어 놓지 않으면 이 마을을 해일로 덮어버리겠다 하더
군."
그러자 그 찌르르 하는 소리는 더욱 귀에 거슬리게 울렸다.
"그 난쟁이들의 식탁다리는 모두 3개 뿐이라 하던가? 영감. 나한테까지 숨길 건
없잖아. 좀 솔직해져 보라고."
그는 어깨위의 존재를 손으로 슬쩍 눌러버릴까 하는 무시무시한 생각까지 하다가
결국 한숨을 내쉬며 작업용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날 영감이라 부르지 마. 난 늙지 않았어."
다시 찌르르 소리가 귀에 울렸다. 이젠 그다지 귀에 거슬리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렇게 하지. 하지만 제피토, 자넨 확실히 늙었어."
늙은 목수 제피토는 눈을 흘겼다.
"겨우 귀뚜라미 주제에 그따위로 말하지 마. 난 널 손으로눌러 죽여버릴수도 있
어."
"늙은이가 아니라 이젠 꼬마같은 소리만 하는군. 제피토." 귀뚜라미가 탄식하듯
말했다. "자네가 어떻게 날 죽일수 있지? 마음약한 목수가."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사이 귀뚜라미는 몇번 찌르륵 댔다. 제피토는 고개를 흔
들었다. 그제야 그는 노인 같이 힘없는 목소리를 흘려냈다.
"그래... 그래..."
귀뚜라미는 제피토를 위로했다.
"별거 아냐. 자네 탓도 아니고. 저러다 언젠가 제자리를 찾겠지. 흔히 인간들은
그런걸 반항기라 하더군."
"반항기 한번 길구먼." 제피토가 웅얼거렸다. "그것이 끝날때가 언젠가? 내가 죽
어서 바닷가 묘지에 고이 안장되었을 때?"
귀뚜라미는 계속 찌르륵댔다. 그 소리는 이제 제피토의 마음에 안식을 찾아주고
있었다.
"아아, 제피토. 너무 낙관주의적인 인생관도 좋지 않지만, 너무 비관적인 인생관
도 신상에 좋지 않아. 한번 죽어보기까지 한 내가 경험한 일이지."
제피토의 눈이 갑자기 분노로 번들거렸다.
"흥! 뭐가 더 낙관적이란 말인가? 하나밖에 없는, 내가 유일하게 정을 나누어 주
었던 녀석은 날 망할 할아범이라 부르고, 이런 빌어먹을 상황을 만들어낸 망할 요
정 년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귀뚜라미는 그를 안심시키려는 듯 조용조용히 찌르륵댔다.
"세상사는 모두 그런거라네. 녀석이「옛날」에 그런 변화를 겪지 않았다 하더라
도, 녀석을 정신적으로 변화시킬 계기는 얼마든지 있었을 거라고."
제피토는 고개를 떨구었다. 그의 볼에 흐르는 무엇이 희미한 달빛을 받아 반짝였
다.
"아냐.. 아냐.. 내가 착하라고 강요했어.「옛날」그대로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녀석에게 인간이 되라고 암묵적으로 강요했던 거야..."
귀뚜라미는 찌르륵 거리기만 할 뿐, 더이상 말을 건네지 않았다. 이럴때는 아무
말도 건네지 않는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달빛은 그를 감
싸고 돌아 포근하게 안아주었고, 요정은 지붕 위에서 사악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
다. 어떤 목공소의 하룻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소년은 아침의 따가운 햇살과 차가운 파도를 견디지 못하고 깨어났다. 그는 아픈
머리를 감싸쥐고 고개를 흔들었다. 어느새 백사장까지 나왔던 모양이다. 주위에는
비어버린 술 두 병이 아무렇게나 굴러나니고 있었다. 그는 약간 남은 술을 입안에
탈탈 털어넣었다. 속이 타는듯 뜨거워졌다. 그는 생각했다. 내가 왜 이렇게 되어
버린 걸까. 그는 품속을 뒤져 담배를 찾아냈다. 불. 불. 아무데도 없었다. 그는
그냥 입에 그것을 물었다. 그래. 그 망할 요정녀석 때문이었다. 이제는 인간도 싫
다. 원래대로가 좋았다. 차라리 영원히 바보처럼 사는게 낫다. 온갖 내장이 타는
듯이 아파왔다.「옛날」이었다면 이런일도 없었겠지.
그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소년은 약간 몽롱한 기분이었다. 그는 술병을 서로
부딪혀 날카롭게 깨어냈다. 그래. 이것으로 녀석을 위협해서...
피식. 원래대로 만들어 달라고 해야지. 그런 다음...
어떻게 하지? 죽여버려? 모르겠다. 다음의 일은 그때 생각하는 것이 좋다. 소년
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리고 마을로 향했다. 할아버지.. 아니, 아버지. 피노
키오는 다시 제피토의 착한 아들이 되고 싶었다. 어느 이름없는 바닷가 마을의 아
침은, 그렇게 언제나처럼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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