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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ube

01/04/01

태그 : 데카메론 프로젝트, 미로, 큐브

데카메론 프로젝트 제3일 (소재:미로)

The Cube (2001/04/01 作)

1.

"오빠, 이제 뭐지?"

6살짜리 여자아이인 힐데는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다. 그녀는 따뜻한 방안의 방
안의 소파에 누워 뒹굴거리며 큐빅을 만지작대고 있었다. 그녀의 오빠는 미소를
띠웠다.

"잘 봐." 그는 큐빅을 집어들고 이리저리 돌렸다. 각각의 색이 뒤섞였다. "이건
퍼즐이지. 원래대로, 같은 색깔끼리 맞추어 놓는 거야. 상당히 골치아프기도 하지
만 풀어낼 때의 성취감은 끝내준다지. 해볼래?"

힐데는 심술궂게 오빠의 손에서 큐빅을 낚아챘다. 그리고 몇번 휘릭거리며 돌려
맞추어 냈다.

"이딴게 무슨 퍼즐이란 거야? 재미도 없잖아."

오빠는 약간 당황해 하는듯 보였지만 다시 큐빅을 집어들었다.

"내가 돌리는 것을 보았으니 그렇지. 네가 기억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알지만...
좋아. 그럼."

그는 돌아서서 한참동안 큐빅을 돌려댔다. 힐데가 하품을 3번쯤 할 즈음, 그는
뒤로 돌아섰다.

"자, 해봐. 쉽지는 않을걸?"

하지만 힐데는 1분만에 그것을 맞추어냈다. 그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동생을 바
라 보았다. "너..."
그녀는 약간의 죄책감을 느꼈지만, 이상하게 별달리 마음이 동요되지는 않았다.
이젠 큐빅이 그녀의 관심을 끌었다. 아홉개의 정사각형. 그 정사각형들이 커다란
또 하나의 정사각형을 이루고 있었다. 그 단순한 기하학적 구성은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더욱더 그녀는 그것에 깊게 매료되어 가고 있었다. 깊게. 더욱...

"힐데!"

우레와 같은 목소리가 그녀의 귓전을 때렸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오빠는
평소와 같은 다정한 모습이 아니었다. 그의 눈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왠
지 진짜로 뜨거워 진것 같아」그녀는 당황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여 앙 하고 울
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오빠의 분노는 가시지 않은듯 했다.

"그래, 너에겐 퍼즐도 아니란 말이지! 그럼 다른것을 보여주지!"

오빠는 큐빅을 집어들고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때부터 그녀의 시야는 흐릿해졌다.
머리가 빠개질듯 아파왔다. 그리고 무엇보다...「뜨거웠다」


2.


"하악... 하악..."

그녀는 희미한 눈을 애써 뜨려고 노력했다. 주위는 무척이나 더웠다. 아니, 정확
히 말하자면 매우 뜨거웠다. 그녀는 갑갑하고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눈의 초점
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지금 일어나지 못하면 영원히 일어나지 못할것 같다는 생
각에서 였다. 주위는 붉었다. 엄청나게 붉었다. 등은 뜨겁게 달구어져 있었다. 누
워 있었기 때문에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전열기의 금속처럼 달구어진 붉
은 색으로 도색된 금속으로 보였다. 그위로 은색의 철제 파이프들이 체스판처럼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녀는 이 생소한 풍경에 겁에 질려서 일어나려 했지만, 몸은 마치 수십년만에
몸을 움직이는 것 처럼 그녀의 의지대로 잘 움직이지 않고 삐그덕 거렸다. 겨우
몸을 일으켰을 때, 처음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흰 가운을 입은 더벅머리의 안
경잡이 사내였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 사내는 안경을 고쳐쓰며 환호성을 올
렸다.

"야호! 이 지옥을 탐험하는데 고통을 나눌 동지가 또 한명 깨어났군."

"닥쳐. 피터."

그녀는 차가운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금발머리에, 역시 흰 가운
을 입은 여자가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그 여자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질문했다.

"꼬마. 이름이 뭐지."

그러자 피터라 불린 안경사내는 펄쩍 뛰었다.

"내가 말했잖아! 힐데가르트 본자크. 독일 수학계의 신동. 내가 신문에서 봤다
고."

힐데는 머리를 긁적였다. 맞는 이야기였다. 분명 자신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
나 그녀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함부로 말할수는 없었으므로
약간 배짱을 부리기로 결심했다(이 사람들이 어느나라 사람들인지는 몰랐지만, 모
두 영어를 쓰고 있었으므로 그녀도 영어를 썼다)

"당신들의 이름을 먼저 가르쳐 주어야 하는것이 순서 아닌가요?"

여자의 눈이 꿈틀댔다.

"당돌하군."

안경사내의 반응은 달랐다.

"멋지군."

여자는 날카롭게 째려보았지만, 안경사내는 아무래도 좋다는표정이었다. 그는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그녀 곁으로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힐데는 흠칫 놀라며 물
러났지만, 그는 빙긋 웃었다.

"그냥 악수하자는 것 뿐이야. 소개는 해야겠지? 나는 영국 옥스포드 대학의 조교
수로 있던 피터 베이커. 뭐, 물리학 쪽에 있었지. 그냥 피터라 불러."

여자는 마땅찮은 표정이었지만 마지못해 소개하는 듯 했다.

"프랑스 소르본 의과대학 교수로 있었던 소피 베르주끄. 베르주끄 교수님이라 불
러라."

그들과 어색한 인사를 나눈 힐데는 자신을 제대로 밝히고 주위를 둘러볼수 있었
다. 이 뜨거운 방은 약 가로세로 5미터쯤 되는 것 같았다. 온통 막혀있을 뿐, 출
구 따윈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 둘 말고도 2명이 더 있었는데, 한명은 40대 중반의 고고학자로, 탐험가들이
정글에서 입을만한 연갈색 탐사복을 입고 있었다. 그는 인자한 인상을 지니고 있
었고, 자신을 미국의 로빈 에릭슨이라 소개했다. 또 한명은 군복을 입은 사내였는
데, 상당히 과묵해 보였고, 실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별명은 크로우라
했고, 진짜 이름은 일행의 누구도 모른다고 했다. 단지 알고있는 것은 용병생활을
했다는 것 뿐.

그들은 이제 힐데 까지 합쳐서 모두 5명이었다. 그들이 이 공간에 들어오게 된
이유는 그들도 알지 못했다. 국적도, 직업도 다른 그들이 어떤 이유로 선발되었는
지는 전혀 알수 없었다. 그들의 공통점이라면, 지난 몇달간의 기억은 깨끗이 지워
져 있다는 것이었다.
단지, 맨 처음 이 공간에서 깨어나 탐험하기 시작한 사람은 피터라 했다. 그는
자신이 푸른색 방에서 깨어났다고 말했다.

"세상에. 나는 그때 해변에서 놀고있는 꿈을 꾸었는데, 차가워서 깨어났거든? 하
하! 물이 차오르고 있더라고!"

그가 이 기막힌 공간을탐험하며 처음 얻은 동료는 베르주끄 교수. 그녀도 방에
누워 있었다고 했다.

"무슨 색깔이었지?"

"주황색."

그녀는 깨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히스테릭하게 반항했다고 한다.

"그때 기억은 나지 않아. 아마도 그 방의 영향이겠지."

"아니, 원래 성격을 드러내는 방이 아니었을까?"

"그래? 그렇다면 네가 덮치려고 했을지도 모르겠군."

두번째로 얻은 동료는 에릭슨. 그는 초록색 방에 있었고, 이미 깨어나 있었다고
했다.

"그때, 에릭슨 씨가 우리를 죽이려는 듯 달려들었지. 뭐, 저기 베르주끄 교수님
의 활약으로 쓰러트렸지만."

"미안하군. 그때 기억은 자세히 나지 않아. 하지만 꿈에서 뭔가와 싸웠던것 같아.
그게 뭔지는 기억나지 않고."

세번째는 크로우. 그도 푸른색 방에 있기는 했는데, 그곳은 완전히 냉동고였다고
했다. 그들은 구석에 웅크려 있는 크로우를 처음 발견했을때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딱딱하게 얼어 있더라고. 이번에도 똑똑하신 베르주끄 박사님의 조치로 살려냈
지만."

"......"

네번째가 바로 힐데, 그녀라고 했다. 그녀는 이 뜨거운 방에 죽은듯 누워 있었다
고 한다.

"그다지 놀라지는 않았지. 벌써 4번째나 되니까, 무덤덤해 지더군."

대충 소개가 끝나자, 그녀는 궁금증을 토로했다. 주로 피터가 대답했다.

"그럼 지금까지 모두 지금과 같은 이런 정사각형의 단색 방들을 돌아다녔단 말인
가요?"

피터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래.. 뭐. 본질적 의미에서라면. 굳이 비유하자면, 그래, 큐빅의 한 조각조각
같다고나 할까? 그래서 우리는 이 망할 공간을 큐브라고도 부르지."

큐빅이란 말에 그녀는 기분이 약간 나빠졌지만 궁금한 것들을 계속 질문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여기 어떻게 들어오고 나가는 거죠?"

피터는 빙그레 웃었다.

"거기에 대해 훌륭한 명언이 있지. 두드려라! 그러면 열리리라!"

힐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베르주끄 교수가 끼어들었다.

"그건 직접 경험하면 알게 될거야."

힐데는 이해할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방은 뜨거웠지만, 이젠 그
것도 익숙해져서, 말하는데 아무런 어려움도 겪지 않았다.

"좋아요. 그렇다면 여기 먹을것은 있나요? 오랫동안 탐험했을 텐데? 그리고 배설
의 문제는?"

피터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뭐? 먹을 것이라고? 아니, 전혀. 우리는 배설의 문제라던가, 그런 생리학적 문
제는 전혀 겪지 못했어. 다만 생생하게 느낄수 있는 것은..."

그는 손부채를 만들어 펴서 부치며 히히덕 거렸다.

"바로 이 빌어먹을 감각이지."

베르주끄 교수는 덧붙였다.

"우리 몸의 생체시계는 완전히 정지한 것 같아. 의학적으로도 희안한 현상이지."

"쳇! 의학적 따위는 집어치라고! 다른 가설도 있잖아?"

피터가 건방지게 말했다. 힐데는 의아해했다.

"가설이라고요?"

"그래. 가설. 약간 SF적이긴 하지만..."

"그게 뭐죠?"

"그건..."

피터는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주저해서가 아니라, 갑자기 숨막힐 정도로 더워졌
기 때문이었다. 그는 힘겹게 미소를 지으려 애쓰며 말했다.

"하아, 하아. 이제... 두드릴때가 온것 같군."

"하아, 하아, 예?"

그때, 크로우가 일어났다. 크로우는 벽의 구석을 힘껏 걷어찼다. 그러자 그것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덜컥 소리를 내며 푹 꺼졌다. 바닥은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뭐, 뭐에요?"

하지만 그녀가 놀랄 사이도 없이, 다른 일행들은 틈으로 뛰어들었다. 피터는 마
지막으로 뛰어내리기 전에 외쳤다.

"자, 열렸다고! 가는거야!"

그녀는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을 날렸다.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숫
자가 보였다.


3.


정신을 차리고 나니, 핑크빛 금속제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녀는 황급히 일어
났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일어서 있었다. 피터는 옷을 툭툭 털어내며 빙긋 웃었
다.

"어때? 무슨 뜻인지 알겠어?"

그녀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숫자에 대해선 잠시 후에 말하기로 했다.

"그런데 여긴 또 어디죠?"

에릭슨이 말했다.

"글쎄, 그건 모른다네. 조금 있다가, 직접 겪게 될 걸세. 그때까진 아무도 모르
지."

피터는 안경을 올리며 씩 웃었다. 그는 냉소를 띠우고 있었다.

"그래. 모르지. 환상일 경우도 있고. 정신적인 작용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있고,
또는 네가 겪었던 것처럼 직접 물질적인 것도 있지. 하지만 환상일 경우가 제일
기분이 더러워. 왜 그런지 알아?"

힐데는 고개를 저었다. 피터의 눈에는 처음으로 일종의 분노와 같은 것이 번뜩
였다. 그녀는 꿈을 생각하고 약간 몸을 떨었다.

"차라리 어떤 미궁으로 떨어지거나 거대한 정글에 떨어지는 것은 참을만 해.
에릭슨 씨와 크로우가 있으니까. 하지만,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것은, 우리가
본래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환상일 경우야!"

그녀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피터는 중얼거렸다. 이젠 혼잣말처럼 들리는 것이
었다.

"아아, 나는 데릴과 다시 만나고, 포엘디 교수님과 말다툼을 다시 할수 있었지.
마음껏 음식을 쑤셔넣고,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도 갈수 있었지. 하지만 깨어나면
그 기분이란..."

그는 이를 갈았다. 여전히 침묵이 지배하고 있었다.

"생각해 봐! 그것들이 다시 꿈이고, 이 망할 현실로, 이 요상한 공간 안으로 되
돌아 온다는 말씀야! 그런데, 이게 정말 현실일까?"

그의 눈은 초점을 잃어가고 있었다.

"내가 아까 SF적 어쩌고 했었지?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가설? 그것은 바로 우리
가 단지 기억과 감정만을 넣은채 만들어진 인공생물체일 경우라고! 그래? 우스운
가? 나는 조교수 피터 베이커가 아닌, 생체 모르모트 PT-0001라는 이름을 가졌을
수도 있다고! 그 상상이 얼마나 끔찍한지 알아? 그게 우스워?"

그때, 베르주끄 교수와 에릭슨이 피터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이 몸부림치는 피터
를 묶어두자, 마치 약속이라도 한것 처럼 크로우가 달려와서 피터의 명치를 가격
해 기절시켰다. 힐데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후우, 후우. 위험했군."

"맞아요. 에릭슨 씨. 여긴 아무래도..."

힐데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번쩍 들었다. 그리고는 눈물을 줄줄 흘리기 시작했
다. 베르주끄 교수와 에릭슨은 기겁했다.

"제길!"

"Merde!"

그러나 힐데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으흑!"

그녀는 바닥에 머리를 연달아 부딪쳤다. 그녀의 머리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힐데!"

그들이 소리쳤다. 그녀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때, 또 숫자가 보였다.



4.

"아, 이제 저는 괜찮아요."

그녀는 머리의 피를 슥 닦아내 버리며 말했다. 눈물도 소매로 닦아냈다. 지금 깨
달은 사실이지만, 그녀는 환자복과 같은 것을 입고 있었다. 의아해 있는 일행들에
게 그녀는 설명했다.

"이렇게라도 해야지 제가 살아있다는 기분이 들거든요. 아마도 이 방은 자신에
대한 부정을 불러일으키는 방인것 같군요."

그들은 입을 다물었다. 아마도 그들 역시 이상한 감정과 싸우고 있으리라. 힐데
는 그들이 진정되기를 기다려 입을 열었다. 그때쯤엔 피터도 깨어났다.

"저는 숫자를 봤어요."

"끄응. 숫자라고?"

피터는 정신을 차린듯 했다. 이제 이 방의 효과는 사라진듯 싶었다.

"예. 여기로 떨어질때요."

베르주끄 교수는 끄떡였다.

"호오, 수학의 신동은 다르군. 뭔데?"

"아까 떨어질 때 본 숫자는「3.」이었어요. "

"Three Point? 농구인가?"

피터의 중얼거림을 무시하고 힐데는 계속 말을 이었다.

"방금전에 본 것은「4.」구요."

피터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다른 사람들도 의아한 표정이었다.

"별거 아니잖아. 1씩 늘어나고 점만 붙여주면 되지."

그녀는 소리를 빽 내질렀다.

"그렇게 간단하게 될게 아녜요!"

모두들 흠칫 했다. 힐데는 미소를 지었다.

"수학은 의외성이 많다고요. 이것은 수열을 나타내는 것일수도 있고, 특별한 수
들의 집합을 나타내는 것일수도 있죠. 하지만 이것은 무엇보다도... 이 공간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가르쳐줄 지도 몰라요. 만약 제게 보이는 수가 일종의 암호체계
와 같은 것이라면...."

그녀는 말을 조용히 이었다.

"여기서 빠져나가기 위한 행동 양식을 알려주는 것일수도 있죠. 아주 간단한 마
법의 말이라던가."

모두는 침묵했다. 모두들 절망적인 상상만을 하며 이곳을 영원히 빠져나갈수 없
으리라 생각했던 것이었다. 힐데의 말은 그들에게 희망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그때였다.

"암호체계라면, 적어도 군에서 쓰였던 모든 암호체계는 알고 있다."

크로우가 입을 열었던 것이었다. 그 역시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은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그들에겐 희망이 있었다. 그래,
아직도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피터가 외쳤다.

"자! 때가 되었다! 크로우!"

크로우는 귀신처럼 스위치를 또 찾아냈다. 이번엔 옆쪽의 벽이 열리기 시작했다.

"모두들 후회는 없겠지? 희망은 있다고! 이 망할 큐브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번째
내딛음이다! 가자!"

그들은 모두 달려갔다. 힐데는 숫자를 또 보았다.




5.

이번엔 흰색 방이었다. 피터가 다급히 말했다.

"힐데! 혹시 숫자를 보았니?"

힐데는 대답했다.

"예! 그건..."

그때,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에릭슨의 탄식이 들렸다.

"제길! 여긴 환상의 방인가 보군! 모두들 잊지마! 지금부터 일어나는 일은 모두
환상이라고.."

에릭슨의 목소리가 멀어져갔다. 그녀는 숫자를 보았다.



6.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녀는 침대를 박차고
일어섰다. 주위는 깨끗하게 정돈된 흰색 일색의 방 안이었다. 그때 방의 문이 열
렸다. 힐데는 방문을 열고 들어온 이가 누군지 쉽게 알수 있었다. 흰 가운, 냉철
한 눈빛. 그녀는 베르주끄 교수였다. 힐데는 반가이 소리쳤다.

"베르주끄 교수님! 또 숫자를 봤어요! 여긴 환상이겠죠?"

베르주끄 교수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쳇. 아직도 전혀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는군."

"예?"

힐데는 당황했다. 베르주끄 교수는 차트를 작성하고 그녀의 발 밑에 내던졌다.
베르주끄 교수는 차갑게 말했다.

"그걸 보고 너 자신이 누군지 확실히 생각해봐. 그럼 이번에도 여기서 나갈수 있
을걸. 그래봤자 몇달 안으로 다시 들어오겠지만."

힐데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고, 베르주끄 교수는 중얼거리며 방을 나섰다.

"천재란 놈들이나, 미친 놈들이나 종이 한장 차이라니까. 현실과 환상이나 구분
할 줄을 알아야지. 아무리 신동이면 뭘해?"

힐데는 차트를 보고 경악했다. 그녀는 정신병, 특히 과대망상증으로 입원해 있는
것으로 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이건 진짜인가? 이게 현
실인가?
하지만 창문 뒤에서 펄쩍거리며 손짓하는 피터를 보고 그녀의 고민은 사라졌다.
그녀는 힘껏 외쳤다.

"베르주끄 교수님! 전 숫자를 봤다구요! 교수님은 지금 환상에 빠져 있는 거라구
요! 여긴 큐브 안이에요!"

발걸음을 돌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렸다. 미소를 짓는 베르주끄 교수의 모
습이 나타났다. 힐데도 미소를 지었다.

"자, 그렇게 잘 가지고 놀던 큐브나 계속 가지고 놀라고. 거기에 다시 들어가든
지 말던지."

교수가 던진 큐빅을 받아든 힐데는 멍청히 서 있었다. 베르주끄 교수는 문을 닫
고 돌아섰다. 방은 조용해졌다.

베르주끄 교수는 차트를 받아들었다. 그녀는 간호원에게 말했다.

"이환자는 격리시키라고. 그리고 이 환자도. 이 환자도. 이 환자도."

간호원은 웃음을 지었다.

"예. 닥터."

간호원이 물러났다. 그녀는 의미없이 진료기록들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무에게도 들리지않게 중얼거렸다.

"단지 환상일 뿐이라도..." 발끝에 무언가 걸리자 그녀는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
것은 큐빅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차버렸다. "난 그것을 오래 즐기고 싶어."
그녀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휴게실로 걸어갔다. 그러다 그녀는 앞쪽에 낮익은 흰
가운의 사내가 보이는 것을 보고 몸을 뒤로 돌렸다. 그리고걸음을 빨리했다.

"까악! 닥터! 조심하세요!"

그녀는 정신없이 달렸다. 난 다만 커피만이라도 마시고 싶어. 큐브따위 알게 뭐
야. 그녀의 등뒤로 분노한 피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베르주끄 교수! 정말 이러기야! 매번 환상에 빠질때마다 이렇게 도망갈거야!"

그녀는 달렸다. 하지만 앞에 갑자기 환자복을 입은 힐데가 나타났다. 힐데는 미
소를 띠우고 있었다.

"교수님. 큐빅을 놓고 가셨네요."

그녀는 무릎을 꿇었다. 힐데는 그녀의 앞에 흐트러진 큐빅을 내밀었다.

"우리는 풀기 전까지는, 절대로 도망갈수 없어요. 자, 숫자에 대해 토론이나 해
보기로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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