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메론 프로젝트 제 3일 - 불가능으로 향함』 (소재 : 미로)
(2001/03/25 作)
나의 눈앞에는 파열된 빛이 번뜩인다. 햇빛은 조각조각 부서져 나의 눈을 괴롭힌
다. 동굴? 혹은 어떤 감옥? 밀실? 미궁? 알수 없다. 나의 기억은 이미 완전히 부
서졌다. 나는 내가 아니다.
나는 그래도 애써 기억을 더듬는다. 아침에 잠시 햇살이 내리쬘 때마다 나는 이
렇게 눈을 감고 기억을 더듬는다. 그것은 그 저주스러운 광자들이 내 두뇌속에 인
지되는 꼴을 볼 수가 없어서였기도 하고, 어둠속에 멍청히 앉아서 가끔 물이나 떠
먹고 , 버섯이나 따먹는 나로선 유일하게 정신을 차리고 할수 있는 유희이기 때문
이었다.
나는 불가능에 도전하는 자이다. 모든 지식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그 모
든 지식의 궁극에 도전하는 것 또한 불가능한 일이다. 허나 나는 지의 궁극에 도
달했다.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가? 오기도 아니었다. 순수한 지적 학구열에 불타서
도 아니었다. 혹은 명예나 인지를 얻기 위해서도 아니다 . 그것은 단지 유희였을
뿐이다.
수학자들은 왜 심심한 나머지 소피스트(Sophist)들이 사람들을 골려주기 위해 만
들어낸3대 작도 불가능 문제에 도전하는가? 그들은 수학의 절대적인 신봉자이다.
이미 그 3문제는 「수학적으로 불가능함」이 들통난지 오래다. 허나 그들은 도전
하고, 또 도전한다. 그것 또한 단지 오기의 문제만은 아니다.
왜 그들 60자리의 소인수 분해 따위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가 ? 컴퓨터로 후다닥
해버리면 금방 끝낼수 있는 것들을 왜 애써 자신의 머리로 해결하려도 노력하는
것일까? 인간 두뇌의 창조력- 어쩌구 떠들어 댄다면 당신은 뭔가 잘못 알고 있다.
그들은 유희를 자신이 즐기고 싶었을 뿐이다. 당신이 특이한 성격이라 남이 즐겁
게 노는 것만 보아도 그들이 놀면서 느끼는 정신적 카타르시스 이상의 그 무엇을
느낄수 있다면 , 나는 당신에 대해 한가지는 확신할수 있다. 「당신은 정상이 아
니다」
나는 지금 내 생각을 누군가 들어줄지도 모른다고 상상하고 있다. 이것은 나는
어리석은 몽상가인가? 그렇다면 마녀학살 때 살아남은 마법사 한명이 신부가 되어
건네준 카발라의 마법서나,봄베이의 싸구려 노점상에서 몇 달러에 파는 성겨(Holy
Writ)따위를 보았다고 내가 주장하는 것은 말짱 헛소리로 들릴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이다. 꿈속에서라도 좋다. 혹은 진실과 구분할수 없는 심각한 몽상이
라도 좋다. 나는 그 책들의 1페이지부터 단 한글자도 틀리지 않고 백지에 기록해
볼수도 있다. 허나 지금은 이 지식을 묻어두기로 한다. 나는 내 생각을 읽을수 있
는 당신이 누구인지 모른다. 나의 생각을 그냥 책읽듯 후루룩 읽어낼수 있는 당신
은 어떠면 신일수도 있다. 그렇다면 더더욱 세상의 신비들에 대해 말할 필요는 느
끼지 못한다. 절대지의 존재인 당신은 내가 굳이 묻지 않아도 모든 것을 알고 있
을 터이고, 혹은 내가 모르는 어떤 지식(과연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까지도 소유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당신은 그럼 내가 누구인지도 알수 있을 것이다.
(내가 세상의 모든 지식을 얻었으면서도 확인할수 없었던 것은 신의 존재였다)
만약 당신이 신이 아니라면 내가 누구인지 궁금할 것이다. 내가 오래 살았고, 또
한 모든 지식을 지니고 있다는 것만으로 추측할수 있는 이들은 많다. 당신은 내가
방랑하는 유대인 아하스 페르쯔나 상 제르망 백작이라고 의심할수도 있고 , 혹은
그 둘 다이거나 여러 신화에서 나오는 불멸자의 이름을 가졌던 적도 있었을 거라
고 상상할수도 있다. 미안하지만 그것은 아니다. 그것은 내가 혀가 잘린채 이 멍
청한 동굴에 남아있는 상황이 이유가 될 것이다. 그 자들이라면 이렇게 어리석은
상황에 빠지는 일 따윈 없었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내가 완전한 지식을 얻
은 것은 여기에 갇히고 난 다음이다.
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어둠이 돌아온다. 광자는 애써 튀어 들어오려 하지만,뉴
턴의 광학은 의외로 사실을 진솔하게 간파하고 있다. 빛은 직진한다. 나의 두뇌는
다시 안식을 얻는다.
아직까지는 생각할 겨를이 남아있다. 내 생각을 듣는 당신에게 시간은 아직까지
남아있다. 나는 경고한다. 만약 당신이 신이 아니라면, 지식을 탐하지 말지어다!
지의 추구는 어두운 미궁의 탐험이다. 수없는 갈림길과 막다른 골목이 당신의 앞
에 놓여있게 된다. 오오! 그리고 시간의 망각이라는 괴물이 쿵쾅거리며 어리석게
미궁에 들어선 자를 쫓는다. 그것은 미노타우르스나 발록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상냥한 괴물은 아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질문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지의 궁극에 도달했는
가? 유희에 목숨을 건 것이냐고? 아니다. 난 도달했을 뿐,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도달하는 것 만이라면 아주 간단한 문제이다. 미로 안에서 원하는 단 한곳으로 찾
아가는 방법이 있다. 미로를 부수거나 뛰어넘어 다니면 된다고? 아, 나는 그러한
것을 굳이 미로라 정의하기를 고집하지 않는다. 그 방법은 의외로 쉬운데 , 바로
미로의 한쪽 벽면을 선택해 그곳에 딱 붙어서 미로를 돌아다니는 것이다 . 그러면
언젠가는 원하는 하나의 방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 문제는 이 방법은 도달하는
곳이 하나일 것이라 가정했을 때만 성립한다는 것이다 . 내 생각은 의외로 현명했
는데 , 지식의 궁극에 도달하는 미로는 모든 지식의 획득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도착할수 있었다. 그러나 지의 궁극에는 아무것도 없다. 무
지가 바로 지의 궁극인 것이다. 지식은 지혜가 아니란 것을 지의 궁극에 들어서야
깨닫게 된다. 나는 어리석었다. 문제는 더 이상 발을 뺄수 없다는 것이다. 무지하
기 위해선 미로를 나와야 한다. 그러나 나는 필요이상의 것을 알게된 후다. 지는
미로를 탈출하는데 전혀 도움이 안된다. 오히려 심각한 방해꾼이 될 뿐이다. 나는
현재 육체적으로 결박되어 있지만, 정신 역시 정체되어 있다. 이것은 전적으로 나
의 선견지명이 턱없이 부족해서였다.
나는 내 생각까지 읽을 수 있는 당신이 이 미로에 도전하지 않기를 바란다. 혹은
분필이나 실을 가지고 미로를 빠져나올수 있다는 생각 역시 버리길 바란다. 나는
당신이 크노소스의 미궁을 아리아드네가 준 실로 통과했다는 얼간이 테세우스의
전설을 믿는 자가 아니길 빈다. 나는 실제로 크노소스의 미궁에 들어가 본적이 있
다. 미노타우르스는 이미 죽었으니 두려워 할것도 없잖은가. 그곳은 엄청나게 길
었으며, 또한 복잡했다. 그리스 시대에 나일론이 이미 발명되었다는 가정을 하지
않는이상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마법의 실 아니라 마법의 실 할아버지라
도 그곳에선 힘을 못쓸 터였다 (미노타우르스는 의외로 멍청하지 않았다). 그렇다
면 테세우스는 어떻게 미궁을 빠져나갔는지 궁금할 터인데, 진실은 의외로 무식하
다. 참혹한 미궁의 훼손으로 보아, 그 희대의 얼간이는 미궁을 「부수고」 다녔던
것이 분명했다. 나는 아리아드네가 전설로 전해지는 것보다 현명한 아가씨임을 짐
작할 수 있었다. 안목이 뛰어났던 그녀가 무식한 얼간이의 정체를 간파하고 검 대
신에 거대한 망치를 쥐어주었으리라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다(물론 안목이 뛰어났
던 그녀가 왜 테세우스 같은 얼간이를 선택했는지는 의문이지만 , 그녀가 배신을
대비하기 위해서도 망치를 쥐어준 것이 적절하다고도 생각할 수 있었다 . 일이 잘
못되면 그 무식한 영웅의 업적을 까발리기만 하면 훌륭한 복수가 되는 것이기 때
문이다. 그녀가 왜 그것을 공개하지 않았는지 나는 알고 있다 . 하지만 그녀의 명
예를위해서 그것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겠다.)
나는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닳고 닳게 인용된 선악과 이야기는 결코간과할 것이
못된다. 지를 추구하는 미로에 발을 들여놓은지 얼마 안되었다면, 발을 빼기도 쉽
다. 당신은 가망이 없다고 생각되면, 주위의 누구에게라도 경고하라. 지식은 독이
든 사과이며 오만의 바벨탑이다.
나는 그 누구도 지식을 얻지 않기를 바란다. 인간의 마음을, 탐욕을 경계하라.
오 미세라스 호미눔 멘테스, 오 펙토라 카이카!(주 :O miseras hominum mentes,
o pectora caeca! 오, 인간의 마음이여, 가엾은 인간의 마음이여!)
어둠은 이제 나의 머릿속을 완전히 점령했다. 나는 다시 잠에 빠져든다. 깊은 잠
으로.
내 귓가로 감미로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스펜티아 박사님, 취침 예정시간이 지
났습니다.'
나는 내 존재를 차가움으로 가득한 연구실에서 다시 인식한다. 문이 열린다.
"박사님, 요즘 늦군요. 어떤 신비서적에 또 빠져드신 겁니까?"
나는 머리를 감싸쥔다. 꿈을 꾼다. 그러나 꿈의 내용은 언제나처럼 기억나지 않
는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조수는 다시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나는 안정
제를 놓아달라고 부탁한다. 그것이 나를 안정시킨다. 비록 무의식에선 그렇지 않
더라도.
나는 요즈음 엄청난 프로젝트에 매달려 있다. 물론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
능한 것이다. 허나 나는 불가능에 도전하는 자이다. 나는 옛 황제의 말에서 힌트
를 얻어 내 사전에서 불가능함이란 단어를 삭제한다. 실제로 불가능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인식하지 않는다 . 내가 인식하지 않는 것은 존재의 유무를
걱정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므로 안심한다. 허나, 나는 다른이들이 볼때는
불가능에 도전하는 자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나는 끝이 분명한
미로를 헤메는 모험가다. 불가능으로의 향함은 내게 존재하지않는다. 지식은 곧
지혜가 된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 프로젝트 랩으로 향하는 나의 눈에 빛이
쏟아져 내린다. 그것은 작은 단도를 거머쥔 옛 신들이었으며, 라그나로크의 거꾸
로된 리메이크 영화가 내 눈앞에 펼쳐진다. 나에게 불가능이란 것이 없다는 것에
눈먼 신들이 불안을 느낀 것임에 틀림없다 . 나는 환희를 느끼며 제압당한다. 그
환희는 곧 나락으로 추락한다. 나는 깨닫는다. 내가 향하는 미로는 곧 불가능으로
의 도전이란 것을. 그러나 대부분의 어리석은 현자들이 그렇듯이 벌어진 후에 후
회하는 것은 도움이 전혀 되지 않기 마련이다. 나는 그때부터 어둠을 좋아하게 되
었다. 목록으로 돌아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