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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ist, Magicien et Cafe

01/01/24

태그 : 데카메론 프로젝트, 커피, 마술사

Journalist, Magicien et Cafe. (2001/01/24 作)

데카메론 프로젝트 제1일 (소재 : 차(茶) or 커피)

0. 기자.

비록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지만, 추위는 그의 어깨를 움추러들게 했다. 그
리고 앞으로 겪어야할 일에 대한 상상의 나래는 그의 어깨를 더욱 위축시켰다. 그
는 평소에 자신이 낙관주의자라고 생각한적은 없었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
은 낙관주의자가 되고팠다. 그러면 이 보이지 않는 짐도 좀 가벼워질 테지.

그때, 신호등이 켜졌다. 그는 터덜거리는 걸음으로 길을 건넜다. 그래, 여긴 어
디지? 그의 눈엔 몇몇 낯익은 건물들이 보였다. 그래. 여기는 시바리트 가(街)였
지. 이제 그의 직장인 신문사까지는 채 5분 거리도 남지 않았다. 그는 더욱더 우
울해 졌다. 핑계. 핑계댈 거리를 찾아야 해.

그는 전혀 쓸데없는 의심 - 예를 들어, 그저께 나눠준 커피에 강력한 수면제라도
들지 않았을까 하는 등의 - 을 이리저리 떠올려 보았지만, 그 고지식한 편집부장
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을 터였다. 늦게 들어가 보았자 편집부장의 잔소리 거리를
늘려주는데 도움을 줄 뿐이었다. 어찌되었든 그는 중요한 인터뷰를 맡았었고, 집
에 돌아가자 마자 곯아떨어졌고, 인터뷰는 물 건너간 것이었다. 전적으로 그 자신
에게 태만함으로 인한 실수였다.

실수? 그는 머리를 감싸쥐고 되뇌였다. 그 누구라도 객관적 시각으로 본다면, 그
의 행동은 오기로 가득한 반항이었다. 하지만 막상 그 자신은 돌아버릴것만 같았
다. 그는 권위주의에 대한 반항으로 발버둥치는 자유주의자가 아니었다 - 또 되고
픈 생각도 전혀 없었다 -. 차라리 그 밑에서 벌레처럼 순응하며 단물을 받아먹는
'벌레'에 가깝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왜? 잠시 돌기라도 했었단 말인가? 그는
한참동안 고민했다.

삐빅.
그의 시계에서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은 이미 신
문사에 도착해야 하는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결국 그는 편집부장에게
욕먹을 꼬투리만 하나 더 잡힌 것이었다.

'내가 왜 이러지.'

그러다 문득 그의 머릿속엔 한가지 두려운 생각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이러다 해
고되는 것이 아닐까.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그는 기자직을 자신의 천직으로 생각
한적은 없었지만 미혼인데다 친구, 친척들도 별로 없었고, 딱히 특별한 기술을 가
진것도 아니었다. 즉, 신문사에서 쫓겨난다면 그는 유일한 금전적 지지기반을 잃
게 되는 셈이었다. 그는 막노동 따위는 죽어도 하고픈 마음이 없었으므로, 필시
뒷골목의 노숙자가 되어 유리걸식하며 살아야 할 판이었다. 제아무리 아량넓은 프
랑스 정부라도 일에 대해 꼬치꼬치 따지는 그같은 사람에 대해 베풀어줄 일자리
따윈 없을 것이었다.
그는 그렇게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암울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즉,
그는 객관적으로 볼때 몽상가에 비관주의자였다. - 그러한 그가 어떻게 기자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정말 신기할 따름이었다 -

그는 배회하다 문득 시계를 바라보았다. 벌써 30분 가량 지나 있었다. 그는 더욱
더 비참한 상상에 빠져드는 대신에, 여기가 어딜까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방향치는 아니었지만, 생각에 잠겨 있다가 엉뚱한 곳으로 곧잘 가곤 했기에, 생각
을 끝내고 나면 주위를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던 것이었다. 어느새 주변은 사람들
도 보이지 않는 을씨년스러운 골목이었다.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찌르기 시작했다.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사이로, 빛바랜 간판들이 늘어서 있었다. 또 여긴 어딜
까. 그는 잠시 신문사에 대해 잊었다.

'아, 그렇군.'

그는 이제야 이 골목이 생각났다. 중학교때 즈음이었던가, 이 골목을 지나다 불
량배들에게 몇 프랑을 빼앗긴 적이 있었다. 별로 큰 돈은 아니었건만, 어린 그는
펑펑 울며 통곡했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는 이 골목을 찾지 않았다. 내가 왜 다시
벼길 온거지. 그는 피식 웃고는 발걸음을 돌리려다가, 시내의 복잡한 도면을 잠시
떠올려 보고는 신문사로 가려면 이쪽 골목으로 빠져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미소를 띠웠다.

그는 골목 깊숙히 걸어갔다. 그는 일부러 주머니에 지갑을 반쯤 빠져나오게 쑤셔
넣고 있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주문이라도 외우듯 중얼거렸다.

'불량배든 소매치기든 좋으니, 제발 아무나 나타나란 말이다! 제발!'

그는 적어도 늦은 이유에 대해선 변명을 만들어 내야 했다. 그와 같은 부류의 사
람들은, 결벽증 까지야 아니지만 일종의 강박관념을 강하게 지니고 있는 터였으니
까.

그러자, 저쪽에서 남루한 옷차림의 사내가 그가 있는 쪽으로 황급히 달려왔다.
그래! 오라고! 그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그의 기대와는 달리, 그의 옆
을 스쳐 사라졌다. 제길.



오래잖아 그는 그러한 것이 아무짝에도 쓸모 없다는 것을 깨닫고 신경질적으로
지갑을 도로 집어 넣었다. 그는 투덜댔다. 그리고 괜한 경찰들을 비난하기 시작했
다. 젠장. 다음에 기사를 쓰게 되면 - 과연 쓸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프랑스 경
찰들의 지나치게 정력적인 활동으로 인한 생의 활력소 감퇴에 대해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는 기사를 써야겠군.

그는 희망을 가지려 노력했다. '그래, 혹 그 편집부장이 개인적 사정으로 인해
나오지 못했을수도 있지.' 그러나 그는 그정도로 안심을 얻지 못했다. 편집부장이
아니라도 그에게 징계를 내릴만한 자들은 널려 있었다. 이번 건이 아니라도 그의
비성실성을 눈엣가시처럼 여겨온 자들은 많을 터였다. 그는 모든 것들을 비관적으
로만 생각했다.

띠리릭.

귀를 거스르는 날카로운 기계음은 그를 현실로 끌어내렸다. 알람인가? 아니지.
벌써 24시간이 지났을리는 없을 테니. 그의 예상은 맞았다. 그 기계음은 그의 휴
대전화에서 들리는 것이었다. 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신문사에서 걸려온 것
이 분명했다. 그는 고민했다. 어떻게 하지? 그는 무의미하게 하늘을 쳐다보다가,
천천히 눈을 내려 왼쪽 건물들의 창 너머로 보이는 모습들을 응시했다. 그러다가,
그의 시선은 한 곳에서 멈추었다. 그는 입을 쩍 벌렸다.

1. 마술사

희대의 마술사이지 도둑이며, 덕망있는 신사이자 귀족이기도 한 엘르아 드 로시
뇰 백작은 요즈음 고민에 빠져 있었다. 얻고자 하는 것은 훔쳐서든, 사든, 어떻게
든 얻어낼수 있는 그로서는 곤란한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이들이 보기에는
별것 아닌 일이기도 했다. 그는 요즘 내오는 커피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
다. 파가도의 영역 밖으로 나가서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고급 커피 하우스들을
돌아보긴 했지만, 왠일인지 그의 입맛에 맞는 것은 없었다. 모든 일에 낙천주의자
인 그였지만, 적어도 마실것에 대해선 그 어느 미식가 못지 않게 까다로웠던 것이
었다.
그는 정말로 입맛에 맞는 커피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그는 황금 카펫과 은제 거
울, 그밖에 온통 호화스럽게 치장된 방을 둘러보았지만, 마음은 전혀 안정되지 않
았다. 그러다 그는 문득 생각했다.

'내가 너무 고급스러운 것만 추구했던것은 아닐까?'

그렇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진리와 진실은 평범함 속에 감추어져 있
는 법이었다. 그리고 우연에도. 그는 피식 웃음을 흘렸고, 평소에 쓰는 짧고 검은
스틱을 주워들었다. 그가 그것으로 은제 거울을 톡톡 건드리자, 거울의 표면은 물
방울이 떨어진 액체의 표면처럼 서서히 파문이 번져나갔다. 그 기막히도록 황홀한
파문이 가라앉을 즈음, 어떤 형상이 거울에 흐릿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모
자를 푹 눌러쓰고는 거울을 향해 걸어갔다. 그의 모습은, 거울에 천천히 동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작할때와는 달리 파문은 갑작스럽게 멈추었다.

2. 카페

'Plende' 라고 하는 간판이 간신히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분명 골목의 손버릇
험한 꼬마 녀석들의 짓이겠지. 카페 플랑드의 유일한 종업원이자 - 주인이자 주방
장인 미셸 플랑드를 제하고 그밖에 더 없었으니까- 보조 요리사이기도 한 리앵 다
비쉬는 어떤 성격인가 하면, 그야말로 우유부단의 표본같은 이였다. 그는 한숨을
내쉬고 간판을 고정시켰다. 그는 이 카페 주인의 정신체계를 이해할수 없었다. 왜
하필 이런 골목 구석에 카페를 세운걸까.

"제길! 이 멍청아! 빨리 들어오지 못해! 또 어딜 싸돌아 댕기고 있어?"

이 카페 주인 미셸 플랑드로 말할것 같으면, 종업원의 이름대신 애칭 - 그 애칭
이 좀 과격하다는것은 눈감아 주자 - 을 불러주기를 좋아하는 이였고, 진정한 교
육을 위해서는 어떠한 종류의 폭력도 불사한다는 주의를 가진 중년 사내였다. 그
리하여, 그는 지금까지 카페를 열고 한번도 불량배들에게 위협을 당한 적이 없었
다. 그가 종업원을 교육시키는 것을 자주 볼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살기 좋은 나
라 프랑스에서, 신고하면 되지 왠말이냐고 하면, 리앵은 실실 웃으며 '그럴수도
있죠' 라고 실실 웃으며 대답해 오히려 어쩌다 걱정해준 주위 사람들의 분통을 터
지게 했다. - 뭐,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옆의 사람이 칼을 맞아 죽는대도 별
상관하지 않았을 테지만 말이다 -

아무튼, 리앵은 주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위로 뛰어 올라갔다. 그의 카페는
2층에 있었다. 재빨리 계단을 뛰어올라간 그는 주인의 앞으로 달려갔다.

"예! 무슨 일이십니까!"

"손님이 왔잖냐! 손님이!"

그는 하나밖에 없는, 그것도 구질구질한 탁자를 가리키며 종업원을 후려쳤다. 리
앵은 플랑드의 성질을 거스를 생각은 전혀 없었으므로, 허술해 보이는 옷차림을
한 더벅머리 사내에게 다가갔다. 그는 물었다.

"뭘 주문하시겠습니까?"

그 사내는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두려운 목소리로 물었다.

"저.. 며칠을 굶어서 그런데.."

리앵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는 주저없이 주인을 불렀다.

"플랑드 씨! 플랑드 씨!"

플랑드는 종업원의 말에 그렇잖아도 험상궂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다가왔다.

"뭐야?"

그 남루한 사내는 잔뜩 위축되었다. 리앵은 되도록 유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공짜 손님인뎁쇼."

"뭐?"

남루한 사내는 자리에서 일어나 슬금슬금 인사를 하고 빠져나가려 했다. 그러자
플랑드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어딜 가시나. 공짜로 먹으러 왔다면..."

"제.. 제발 잘못했으니."

"뭐? 먹으러온 사람을 내가 왜 내쫓아? 멍청아! 빨리 먹을것좀 준비해 오너라.
재료는 네놈 마음이지만, 어설프게 만들었다간 네놈이 작살난다."

남루한 사내는 어리벙하게 서있었고, 리앵은 두말할것 없이 주방으로 달려갔다.
리앵이 생각하기에, 도대체 플랑드란 작자는 이해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인물이었
다. 카페 간판을 내걸고 있긴 했지만, 그건 허울뿐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건 완전
히 빈민들을 위한 레스토랑이었다.

'어쨌든, 불호령이 떨어지기 전에 음식이나 만들어야 겠군.'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재료를 고르기 시작했다. 그는 한쪽 구석에 쌓인 커피
원두와 그밖의 재료들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이거, 카페에 취직한 주제에 죽을
때까지 커피만드는 것은 구경도 못하겠군. 그러다, 문득 그는 주방 한켠에 놓인
거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을 크게 떴다.

3. 마술사와 기자, 그리고 카페.

리앵은 23년 평생에 자신이 보고 있는 것에 대해 그다지 의심을 가져본적이 없었
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에 대해선 지극히 회의적이었다. 거울속에서
튀어나온 검은 마술사 정장의 청년은, 모자를 슬쩍 들어올리며 빙긋 웃었다.

"주문 안받습니까?"

"아, 예? 예."

리앵은 자신이 놀라서 뒤집어지는 대신에 주문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심각한 고민을 하지는 않았다. 그는 능동적이었으니까.

"프.. 플랑드 씨!"

그 마술사 청년은 창가쪽 자리에 앉았다. 리앵은 헐떡거렸다. 세상에나! 손님이
로군! 드디어 제대로 된 - 등장이 특이하긴 했지만 - 손님이야! 아까의 남루한 사
내는 구석에 틀어박혀 조용히 있었다. 플랑드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뭘 주문하실거요?"

오오! 그런 말투로는 있는 손님도 다 달아나겠어요. 리앵은 간절한 눈빛으로 주
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마술사의 입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아, 당신의 능력껏, 가장 훌륭한 커피를 만들어다 주시오. 미리 충고하겠는데,
얼렁뚱땅 만들어 올 생각은 말아주시오. 이것은 파가도의 첫번째 마술사로서 하는
맹세이자 경고요."

그 말이 얼마나 중대한 것인지는 다른 마술사들, 마법사들이라면 너무나 잘 알테
지만, 플랑드는 별로 이 첫번째 손님의 태도가 달갑지 않았다.

"이보쇼. 당신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겠지만, 난 먹을 것을 만들면서 내기 따
윈 하지 않소. 아무래도 미식가 흉내라도 내는 모양인데, 그런걸 원하려면 파리
시내의 카페 프로코프(Cafe Procope)나 가보시오. 난 당신에게 줄 커피따윈 못 만
들겠소. 차라리 내 멍청한 종업원에게 존대를 하는게 낫지."

리앵은 그 말이 얼마나 모욕인지 너무나 잘 이해했다. 하지만, 첫번째 손님을 대
하는 저 시건방진 태도라니.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유유부단한 성격에 환멸을 느
꼈다. 그러나 오히려 마술사는 주인의 태도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음.. 좋소. 뭐, 당신이 그렇게나 자신감있는 태도를 보인다면야. 아까의 말은
취소하오."

플랑드는 마술사를 잠시 바라보다 고개를 휙 돌렸다.

"제길. 별 놈들이 사람 신경을 건드리는군. 좋아, 내가 당신을 만족시키는 커피
를 못 만든다면, 당장 내일 간판을 내리지."

"내기를 싫어하신다면서?"

"당신은 예외야."

그러면서 쿵쿵거리고 주방으로 가는 플랑드를 보며, 리앵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는 남루한 사내 곁으로 다가가, 돈을 쥐어주며 말했다.

"여기 있어봤자 오늘은 별로 좋을것 없을것 같군요. 나가서 끼니를 해결하세요."

사내는 기다렸다는 달아나듯 문을 박차고 사라졌다. 리앵은 피식 웃어버렸다. 그
리고 그는 마술사를 바라보았다. 마술사는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상을 관조
하는듯한 태도. 그것은 절대자의 자존심과도 같은 것. 그런데 그 모습은... '너무
매력적이었다'

그는 자신의 생각에 빰을 후려칠뻔 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거지? 정신차려
라 리앵. 그것은 일반적인 존경심을 넘어서.... 숭배심에 가까워져 갔다. 그것은
광신도들의 신에 대한 맹목적 사랑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알수없는 감
정에 매우 당혹스러워했다.




기자는 천천히 간판을 바라보았다. 카페 플랑드. 그는 휴대전화를 주변의 벽에
힘껏 집어던졌다. 당연히 그것은 박살이 났고,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카페를
향해 걸어갔다. 그는 지금 자신의 행동에 추호도 불안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는 어두컴컴한 계단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계단은 보통 사람들에게라면 충분
히 모종의 혐오감을 심어줄수 있는 공간 배치를 지니고 있었지만, 그는 오히려 안
락함을 느낄 정도였다. 그는 그것을 잠시나마 즐기다가, 이내 카페의 허술하고 낡
은 유리문 앞에 도달했다. 그는 유리문을 열었다.

그의 눈에 들어온 카페는, 명색이 카페였지 간판이나 계단, 출입문이 풍기는 분
위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어렵지 않게 바로 전에 창을 통해서 본
그 사내를 찾아낼수 있었다.


리앵은 기뻐해야 할지, 놀라야 할지 혼란스러운 감정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하루에 두번째의 손님이라니. 우울한 표정을 짓고있는 사내였지만, 옷차림이나 행
동거지를 보아할 때 분명 돈을 치르고 갈수 있는 '손님' 이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을 괴롭히는 것은 그러한 문제가 아니었다. 마술사의 옆에 그가
앉자, 모종의 이상한 감정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질투심이랄까?
물론 그것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질투가 아니었지만, 그런 경험이 없는 리앵으로
서는 당혹할 만한 일이었다. 정신차려, 리앵. 저분은 남자고, 손님이야.

"저.. 뭘 주, 주문하시겠습니까?"

리앵은 평소에 청산유수처럼 잘 돌아가던 혀가 굳었다. 미치겠군.

우울한 사내는 고개를 돌렸다.

"음... 물이오."

물이라고? 리앵은 자신이 사람을 잘못 본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워졌다. 물도 주문
을 해? 그래도 명색이 카페인데?

"그러죠."

그는 종업원답게 물러났다. 그래도 그 당혹스러운 감정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물
이라. 물. 카페에 와서 물.



마술사는 자신의 앞에 있는 우울한 인상의 사내를 웃으며 바라보았다.

"평소 흠모하는 인물이 상 제르망이나 매를랭이오? 혹은 데이비드 카퍼필드?"

"아니오."

"그럼 나한테 뭘 바라시오?"

"글쎄. 나도 모르겠소."

마술사는 고개를 으쓱였다.

"좋아. 당신 이름은 뭐요?"

"장 틸로드 랑베르."

"직업은?"

"기자."

"나이는?"

"35세."

"평소 좋아하는 음료는?"

"에스프레소. 고급이든 하급이든."

"좋소. 당신에 대한 분석은 끝."

기자 랑베르는 웃는 대신에, 마술사의 눈을 바라보았다.

"이봐요. 우울한 친구. 그렇게 찌푸린 표정 짓지 말라고. 난 낙천주의자 마술사
라고 자부하는 자이긴 하고, 친구 제르망 백작만큼 괴짜도 아니라오. 하지만, 당
신의 고민을 풀어줄 능력은 없소. 무릇 내 능력은 파가도 밖에선 제한되는 법이라
오."

기자는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에 질문했다.

"당신의 이름은?"

"음...? 루이 알랭."

"가명이군요."

마술사는 난처한듯 고개를 까닥였다. 그는 모자를 더욱 깊숙히 눌러썼다.

"으- 흐흐흠. 물론, 거짓말을 해선 안되지. 하지만, 완벽한 거짓말은 아니고, 또
마술사는 본명을 공개하면 안되는 법이지. 그만큼 신비감이 줄어들거든."

기자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말투 역시 그러했다.

"신비감이야 내 알바 아니고, 내 시간을 돌려주시오. 당신이 가져간 것 다 알고
왔소."

마술사는 고개를 흔들었다.

"쯧쯧. 자신이 잃어버린 시간은 마술사에게 찾는법이 아니라오. 아무래도 뭔가에
대해 후회하고 있나 본데..."

"돌려주시오."

기자의 말투는 단호했다. 하지만 마술사는창가만을 바라보았다. 그때, 플랑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쿵쿵.

"자, 이것이 당신 성에 안 찬다면, 간판만 내리는게 아니라 내 혀, 눈알, 손목까
지 뽑아 드리겠소."

"자신감이 있단 말인가. 무릇 인간이라면 그래야 하는 법이지."

마술사의 중얼거림에 기자는 조용히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플랑드는 탁자 옆에
서 팔짱을 끼고 관조했다. 마술사는 커피잔을 들었다.

"Cafe au lait?"

"왜? 불만있수? 고급 커피를 바라셨다면, 꿈 깨시오. 미리 말했지만, 그런건 파
리 시내에 있는 카페에서 알아보쇼."

뭐, 진리는 평범한데 있는 법이라. 마술사는 잠시 향을 음미하다 조금씩 커피를
맛보았다. 그들은 숨을 죽이고 있었다. 마술사도, 기자도, 카페 주인도, 그 누구
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것은 팽팽히 당겨진 ?撻? 얇은 실과 같은 긴장감을 조성
했다. 그것은 끊어지기도 쉬운 법이라.

"저, 물입니다."

리앵은 자신이 심각한 긴장상태를 해소하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전혀 지각하
지 못했다. 어쨌든 그것은 그에게 행운이었다. 마술사는 쓴웃음을 지었다.

"크흠."

"내, 내 커피가 맘에 들지 않는단 말이오?"

플랑드는 버럭 소리질렀다. 마술사는 대답하지 않고, 기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커피잔을 그에게 밀어냈다. 카페 주인의 얼굴이 벌개졌다.

"자, 기자 양반. 당신에게 필요한건, 누군가가 가져간 시간이 아니라 여유. 앉아
서 커피마실수 있는 여유요. 마시던 거라서 찜찜하시오? 그런것에 구애받지 마시
오! 이 커피는 충분히 대접받을 자격이 있소."

플랑드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마술사를 바라보았다. 마술사는 다시 쓰게 웃었다.

"아, 당신 커피가 맛이 없어서 그런게 아니라, 이제야, 여기서 맛을 찾을수 있었
기에 어이가 없었던 것이었소.참, 우습군. 여기에서야..."

다시 마술사의 얼굴에 웃음이 돌아오자, 플랑드의 얼굴에는 노여움이 돌아왔다.

"무슨 말을 하려는..."

"좋소. 당신을 내 전속 커피 담당자로 발탁하지. 어떻소? 내 제의가?"

"에?"

리앵은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고, 기자는 털썩 주저앉았다. 낡은 의자는 무너질것
처럼 흔들렸다. 마술사는 빙긋 웃었다. 그리고, 품속에서 검은 손수건을 꺼냈다.
통속적인 순서대로, 모두에게 앞뒤로 아무것도 없음을 확인한 후에야, 그곳에서
뭔가를 꺼내 보여 주었다. 그것은 각설탕이었다.

"선금이오."




"아하, 하. 세상에. 들었어요? 이제부터 제가 이 카페 주인이라는 것?"

"......"

기자는 고개를 숙인채 침묵했다. 리앵은 혼자서 팔짝 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세
상에나. 오늘은 정말 이상하고 희안한 날일세. 느닷없이 손님이 두명이나 찾아오
질 않나. 또 돌연 카페를 맡긴다고? 선금도 황금제 각설탕이라니--



그는 더이상 신문사에 관한 생각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다. 마술사가 말했던 것.
그것은 여유였다. 커피를 마실수 있는 여유라. 그는 식어버린 커피잔을 바라보았
다. 안됐지만, 그건 당신 취향이고,내 취향은 아니야. 하하하!
그는 웃을수 있었다.

"하하하하..."

돌연 테이블에서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리앵은 그 중에도 깜짝 놀랐다.
우울한 사내, 아니, 우울하게 보였던 사내는 웃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이런. 종업원."

"흠. 이제 카페 주인 다비쉬 씨라고 불러주시죠."

리앵은 어깨를 으쓱댔다. 기자는 킥킥대며 고개를 끄떡였다.

"아무렴. 그런데 당신 카페 에스프레소 만들줄 아시오?"

"물론이죠."

"그럼, 한잔만 주시오. 아, 커피 슈거는 빼고."

"예!"

리앵은 활기찬 대답을 하며 주방으로 향했다. 그는 주방에 쌓여있던 커피 원두를
쏟아놓으며 즐거운 비명을 질러댔다. 야호. 이놈들. 너희들도 세상구경 좀 하겠구
나. 그는 콧노래를 부르며 원두를 분쇄기에 집어넣고, 전 주인과 마술사가 사라진
거울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의 귓가에 기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보시오! 그런데 전에 주문한 물은 어떻게 된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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