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탐정극 제5화 : 정의 |
08/08/10 |
태그 : 탐정, 정의, 실종, 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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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릭터 원안 : 아스 일러스트 : 시엣 글 : 로이미르 몸을 크게 뒤로 젖히고, 손을 위로부터 힘차게 내린다. 수없이 연습해 온 동작이었기에 익숙한 궤도로 떨어진다. 그리고 손끝에 느껴지는 감각. 꿈틀거리는 사람의 무기력한 몸뚱아리를 두드린다는 전율과도 같은 쾌감. 그것은 머리 꼭대기부터 엉덩이 끝, 꼬리뼈 쪽으로 흘러내린다. 지금은 퇴화되어 사라졌다는 꼬리. 그 꼬리를 아직까지 가지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만약 지금 꼬리가 있었다면, 그것은 격렬하게 흔들리고 있었을 것이다. 다른 무엇도 아닌 기쁨의 표시로. 야만성의 증거인가? 하지만 이렇게도 냉정하게 머리는 지금 두들기고 있는 사람을 죽이지 않고 얼마나 많이 두드릴 수 있는지 냉정하게 고민하고 있지 않은가. 살인 같은 건 최악이다. 이를테면 뭐라고 계속 뻐끔대면서 몸을 움츠리고 있는 이 꾀죄죄한 사람도, 가족 정도는 있을 것이다. 비록 무책임하게 내버려두었다고 해도, 사죄할 기회조차 빼앗을 자격은 없다. 그러니까 절대 죽이지는 않는다. 그저 두드릴 뿐이다. 마치 다듬이질이라도 하듯 온몸을 두들긴 뒤에는, 폭풍과도 같은 절정의 순간이 있다. 그것은 더할나위 없이 충실한 시간을 보낸 만족감. 온 몸을 감싸고 약간 달뜨게 하는 그 감정은 마치 마약과도 같아서, 그 순간만은 손을 놓을 수 밖에 없다. 그것이 끝나면 이제는 뒤처리다. 숨이 멀쩡하고, 크게 다치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깔끔하게 물러선다. 길게 기다리지 않아 사람이 오고, 그다음 경찰이나 병원에서 알아서 처리해줄 것이다. 깔끔하게. 아주 깔끔하게. "그나저나, 너무 깔끔한데." 나현은 사건 현장에 서서 형사들이 완전히 빠져나간 것을 확인한 뒤, 한미를 남겨두고 재빨리 골목으로 뛰어들었다. 교대시간인지도 몰랐지만, 그다지 걱정은 되지 않았다. 아까 그 지독한 악의로 뭉쳐 있었던 미친놈만 아니라면야, 어차피 어린 여자애로 보일 자신을 형사 실종 사건같은 거창한 사건과 연결시킬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잠입하고 나자 절망적일 정도로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막다른 골목일 뿐, 강형사의 차도 빼 버렸는지 차 한대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한명 증발해버린 장소 치고는, 너무나도 깔끔했다. 딱히 목격자를 찾아서 탐문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기에, 나현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막막했다. "끄응. 역시 원시적인 방법으로 가야 하나." 주변을 슬쩍 둘러보고, 집들에도 인기척이 없는 것을 확인 한 후 나현은 벽에 딱 붙다시피 해서, 눈을 크게 뜨고 손으로 벽을 훑으며 지나갔다. 밝은 색의 블라우스가 더러워지기 시작했지만, 나현은 전혀 개의치 않고 주변을 흘끔흘끔 확인하며 그 작업을 계속했다. 그렇게 몇번이고 왔다갔다를 반복한 나현은 옷을 탈탈 털어내고, 턱 부근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나현의 주장에 따르면, 원래 까슬까슬한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그의 버릇이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할때마다 한미는 기겁을 했지만. 나현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골목을 들어가기 직전, 모서리 부근을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뭐지. 흠집? 자연스럽게 생긴것도 아니고. 아이들 장난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치기엔 좀…" 이걸로는 부족해. 아직은 감이 잡혀오지 않는다. 나현은 담배를 피우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긴장감이 극도로 높아진 상태에서는 담배를 입에 대면 생각이 흐트러지곤 했다. 거기다 형사들까지 되돌아온다면 귀찮아진다. 사건과는 관련이 없다 해도, 담배를 피러 몰래 피러 들어온 불량학생으로 오인받기 딱 좋으니까. 나현은 입맛을 다시며 이번엔 바닥에 무릎을 꿇다시피 허리를 숙였다. 꽤나 엉거주춤하고 우스꽝스러운 자세가 되었지만, 그다지 몰골을 따질 여유는 없었다. 느릿느릿하지만 꼼꼼하고 세심하게 바닥을 훑어보다가, 문득 멈춰서 손을 내민다. 희미한 자국. 흠집. 벽에 난 것과 비슷한 흠이다. 어차피 무심코 지나가면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흠이었지만, 하얗게 일어난 흠과 검은 도료의 광택이 덧씌워져── "저기, 팬티 보인다." ![]() 무덤덤한 지적 한마디에 나현의 집중력은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뒤에서 들린 건 여자의 목소리. 혹시나 싶어서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확 붉히며 뒤를 돌아보았지만, 거기에는 전혀 의외의 인물이 뚱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기, 거기서 그런 자세로 뭐 하는거야?" 자신과 비교해 보아도 조그맣게 보이는 교복 소녀가, 양 허리에 손을 올리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나현은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최대한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려고 애쓰면서 억지 미소를 지었다. "아니, 뭘 좀 떨구는 바람에 찾으려고." 나현은 몇가지 돌발상황의 대처법을 강구하고 있었지만, 자신보다 더 조그만 소녀가 당돌하게 자신을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볼 경우는 상정하지 못했다. 우락부락한 거한을 상대하는 것 보다 여고생을 상대하는 것이 더 곤혹스러운 나현으로서는 지극히 난감한 상황일 따름이었다. "글쎄. 내 눈에는 그렇게 안 보이는데." 소녀는 눈을 가늘게 하고 나현을 지긋이 응시했다. 빨리 이 거북한 대치를 끝내버리고 싶은 나현의 입장상, 울컥 화가 치밀어올랐지만 괜시리 의심을 받아서 일을 엉망으로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에 최대한 감정을 꾹꾹 누르며 미소를 지어냈다. "저기, 아까부터 나이도 비슷해 보이는데 언제부터 봤다고 반말하는거야?" 나현은 최대한 비아냥조로 들리지 않게 하려고 애썼지만, 짜증이 묻어나오는 것 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눈앞의 소녀는 태연자약했다. "나이가 비슷하다면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뭔지도 알고 있을텐데? 방금전 주머니에서 흘러나온 담배는 뭘까?" 나현은 싸악 핏기가 가시는 듯한 기분과 함께, 주머니를 뒤적거리고 바닥을 둘러보았다. 아니, 분명 방금전에 담배는 한미 녀석에게 맡기고 왔는데? 어떻게 떨어질수가 있지. 잠깐. 뭔가 이상해. 나현이 고개를 들자 소녀는 생글생글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희미하게 냄새가 나길래 짚어봤는데 정답이네?" 이 꼬마가 누굴 놀리나. 나현은 한방 먹었다는 느낌과 함께 눈동자에 불을 튀겼다. 인내심의 한계였다. 성큼성큼 소녀의 앞으로 다가가서는 그 멱살을 틀어쥐었다. "정답은 뭔놈의 정답이야? 그래서 어쩌겠다고? 왜 자꾸 아까부터 시비지? 그래. 골목에 짱박혀 담배나 피우는 양아치년에게 삥이라도 뜯기고 싶다 그거냐?" "뭘 뜯는다고?" 낮지만 조용한 분노가 담긴 반문에, 나현은 고개를 들었다. 눈 앞에 있는 소녀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골목을 돌아 나타난, 소녀와 같은 교복을 입은 여자아이가 나현을 노려보고 있었다. 문제는 나현의 시점에서 까마득하다 싶을 정도로 올려다볼 정도로 키가 컸다는 것. 자신이 멱살을 쥐고 있는 소녀와 친구 인듯 싶은 분위기였는데, 농담으로라도 호의를 가지고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나현은 재빨리 손을 털어내고,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구겨진 소녀의 교복 부분을 탈탈 털어주며 생긋 웃었다. "에이. 뜯기는 뭘요. 장난 좀 친거 가지고." "……." "……아무튼 전 바쁜 약속이 있어서 이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골목에서 내빼는 나현. 그 뒷모습을 노려보던 사혜는 잠시 뛸까 말까 고민했지만, 한슬이 옷자락을 잡아당기자 움직임을 멈추었다. 사혜는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한슬을 돌아보며 질문했다. "저 애는 뭐야?" 그러자 한슬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대꾸했다. "글쎄." 한슬은 아까 나현이 있던 자리에서 똑같이 우스꽝스러운 포즈를 취하면서 바닥을 내려다보았고, 무방비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혜는 난데없이 한슬이 긴 치맛자락을 슬쩍 걷어올리며 팔랑팔랑 흔들자 정신이 혼미해지는 바람에 하마타면 그자리에서 뒤로 넘어갈 뻔 했다. "뭐하는 앤지 몰라도 이렇게 무방비하더라고……아하. 이거였군?" 한슬은 나현이 발견했던 바닥의 자국을 보고 짝, 하고 손뼉을 쳤다. 한슬은 유쾌한 기분이 되어 중얼거렸다. "흐응. 그렇단 말이지." 한슬은 뒤를 돌아보며 손을 내밀었다. "사혜야. 아까 부탁했던 거… 어? 잠깐? 왜 그렇게 비틀거리고 있어?" 팔을 휘저으며 필사적으로 얼굴을 가리는 사혜의 모습에 한슬은 혀를 차며 말없이 휴지를 건넸고, 사혜는 고개를 돌린 채 정신을 수습했다. "으. 으음. 미안. 갑자기 빈혈기가 일어나서 코피가…" 한슬은 빈혈과 코피의 의학적 상관관계에 대해서 따지고 드는 대신에 한숨을 내쉬었다. 사혜는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헛기침을 했다. "흠. 흠. 아무튼 네가 말한대로 근처 편의점에 들려봤어. 수영이가 말한 형사님 실종 시각이랑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시간 즈음에 들린것 같던데." "…역시. 그럼 여기서 실종된건 확실한것 같네." "그런데, 조금 신경쓰이는 이야기도 들었어." "응?" 한슬은 고개를 들었다. "내가 물어보기 전에, 다른 사람이 거의 한치도 틀리지 않은 내용을 물어봤다고 하더라고." 한슬은 사혜의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거, 경찰 아냐?" "나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편의점 알바가 아는 사람이래. 여기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서 학원강사를 하고 있는 남자라고 하더라고." "……왜 뜬금없이 학원강사가 형사님의 행방을 캐고 있어?" "거기까진 나도 모르지." 사혜의 대답에, 한슬은 골목의 담벼락에 슬며시 기대어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그리고 무심하게 손으로 천천히 벽을 훑어 내리다가, 아까 나현이 발견한 것과 같은 흠을 발견하고 손을 딱 멈추었다. "이건……." 주의 깊게 그 흔적을 살펴보던 한슬은, 눈을 빛내더니 다시 바닥에 딱 붙어서 바닥의 흠집을 관찰했다. 사혜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서 한슬이 방금전까지 있던 장소에 귀신이라도 붙어있지 않을까 싶은 강렬한 눈길로 쏘아보기 시작했고, 한슬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혜야. 아까 그 애 말야. 누구인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그냥 담배피러 골목에 짱박힌 양아치 아냐?" "으응. 아냐. 그 애가 찾고 있던 것 말인데." 한슬은 고개를 저으며 손가락을 내밀었다. 바닥을 문지른 탓인지, 새까맣게 더러워져서 뭔가 그을음 같은 것이 묻어 있었다. 사혜는 의아한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았지만, 아무것도 특별한 것은 발견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슬은 서늘한 표정으로 묘한 미소를 지으며 그 손가락을 입 속에 집어넣었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사혜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고, 한슬은 혀를 살짝 내밀고 생글, 미소를 지었다. "피 맛이 나는걸." 사혜는 차가운 한기가 등골을 관통하는 기분을 느꼈다. 눈앞의 소녀가 평소에 자신이 알던, 아이스크림을 무척이나 좋아하며 발끈하기 잘하는 그 조그마한 친구가 맞단 말이야? 사혜는 더할 나위 없는 불길함이 뭉클뭉클 솟아나오는 것을 느꼈지만, 그것을 말로 하면 돌이킬 수 없게 될 것만 같아서 그저 침을 삼켜야만 했다. 하지만 한슬의 표정은 이내 여느때처럼 풀어져서, 약간의 호기심과 즐거움이 감도는 얼굴로 돌아왔다. "에이. 농담이야. 농담. 내가 무슨 로봇이나 외계인인 줄 알아? 혈흔검사도 안하고 말이지. 괜히 그렇게 심각한 표정 지으면 나까지 무안해지잖아. 에이. 퉤퉤." 얼굴을 찡그리며 침을 뱉는 한슬을 보며, 사혜는 긴장을 풀고 안도했다. 방금 전 느낌은 기우였던 것이 분명해. 한슬은 피식 웃으며 입가를 슥 문질렀다. "뭐, 장난은 그쯤 해두고. 아무튼 그 애가 찾는거랑 내가 찾는 거랑 같다는 건 확실히 알았어." "그렇다는 이야기는…" "…응. 이 사건을 뒤쫓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지." 한슬은 어깨를 으쓱하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거기다 난데없는 학원강사 선생님까지 등장하다니. 여기에 도대체 몇명이나 얽혀 있는거야?" 하지만 한슬의 표정은 곧 밝게 변했고, 눈동자는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이거, 오랜만에 재미있어지기 시작했어." "……난 슬슬 정이 떨어지려고 하는데." 사혜의 푸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슬은 사혜의 손을 붙잡아 끌었다. "뭐, 뭐하는 거야?" "잠깐 와봐." 한슬은 벽의 흠집을 가리키며 사혜를 올려다보았다. "이거, 뭐라고 생각해?" "그냥… 벽 아냐? 별로 특별한게 없다고 생각하는데." 한슬은 고개를 흔들었다. "으응. 그렇지 않아. 여기 하얗게 일어나 있지? 자세히 보면, 주변 벽이랑 색깔이 틀리잖아? 벽이란 것에는 으레 흠집이 잔뜩 남기 마련이지만, 오래된 것들은 별로 티가 나지 않거든. 이건 생긴지 별로 안 된거야." "그런데 그게 뭐가 어때서? 차가 지나가다 낼 수도 있고, 아이들 장난으로…" 사혜의 반문에, 한슬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게 생각할수도 있겠지. 적어도 위치상 차는 아냐. 하지만 이게 아이들이 장난친거라고 넘어가게 되면…" 한슬은 바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바닥의 똑같은 흠은 설명하기가 난감해지지." "똑같은… 흠? "응. 같은 이유로 생겼거든." 허리를 약간 굽히고 손가락으로 바닥 주변을 문질러서 내민 한슬의 손가락에는 아까 보여주었던 검댕과 같은 시커먼 것이 묻어 있었다. "뭐야?" "검은색 도료가 묻어난거지. 이 바닥에 흠집을 낸 어떤 물건으로부터. 정확한 형태는 확신하지 못하겠지만, 아마 재질은 금속일 확률이 높아.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까지 흠을 낼 수가 없거든." "무슨…" 허리를 일으킨 한슬은 다시 벽으로 가서 손가락을 대고 박박 문질렀다. 시커먼 것은 아까보다는 희미하지만 약간이나마 묻어 나왔다. "여기서부턴 거의 추측으로만 짐작할 수 있을 뿐이지만, 어느정도 재구성은 가능해. 그러니까…" 심호흡을 한 한슬은 천천히 벽을 어루만지다가, 갑자기 보이지 않는 뭔가를 잡고 휘두르는 시늉을 했다. "으음. 키로 치면 나보다는 크고 너보다는 작으려나. 뭐. 물건의 길이는 짐작하기 어려우니까 정확한 추정은 힘들겠네." "…누가?" "여기서 내가 하는 것처럼 뭔가를 휘둘러서 벽에 흠을 낸 사람 말야." 의아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혜에게, 한슬은 벽을 손가락으로 노크하듯 톡톡 두드렸다. "그 사람은, 있는 힘껏 어떤 물건을 휘둘러 벽에 흠집을 냈어. 대충 위치로 봐서 이 골목 밖에서 안쪽을 향해 휘둘렀지. 그리고 조금 더 와서, 저 바닥을 향해 같은 물건을 있는 힘껏 휘둘러 내리쳤어. 역시 골목 안쪽을 향한 채." 천천히 걸어서 바닥을 향해 뭔가를 내려치는 시늉을 한 한슬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면, 왜 그랬을까?" "……어이. 잠깐. 네 말대로라면 형사님이 여기서 습격이라도 받았단 말야?" "뭐,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그렇게 되겠지만. 이건 좀 다른 일이라고 생각해." "응?" 한슬은 다시 가상의 흉기를 잡아서 붕붕 휘두르다가 사혜에게 휘두르는 흉내를 냈다. "그 형사님에게 누군가가 흉기를 휘둘렀다고 하자. 지금 본 흠집으로 보아, 최소한 두번은 있는 힘껏 휘둘렀는데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벽과 바닥을 때리는 헛손질을 한 누군가가, 멀쩡히 서 있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없을것 같은데." 한슬은 고개를 끄덕였다. "과대평가는 아니라고 생각해. 기습이라면 한방, 그걸로 형사님이 당했다면 모를까, 한번 이상의 헛손질을 할 정도의 상대를 형사님이 가만 내버려 두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그러면 어떻게 된 거라고 생각해." "두가지 가능성이 존재하지." 한슬은 검지손가락을 들어올렸다. "하나는 형사님의 실종사건과 흠집과 관련된 사건이 전혀 다른 시간에 일어난 별개의 사건일 경우. 두번째는…" "두번째는?" "두 개의 사건이 동시에 일어났고, 제3자의 존재를 가정할 경우." 눈을 빛내며 단언하는 한슬. 사혜는 그런 한슬을 보며, 다시 미묘한 이질감을 느껴야만 했다. "아무튼, 형사님의 실종 사건이 있었던 골목에서, 이런 묘한 흔적들이 남은 게 결코 우연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아. 여기는 뭔가 더 있어. 아직 부족한 정보가 너무 많아." 한슬은 끄응, 하고 신음을 흘리며 고민에 잠겼다. 그 모습을 멀뚱히 바라보던 사혜는, 한슬의 머리를 쓰윽쓰윽 쓰다듬었다. 기습적인 행동에 한슬은 발끈해서 펄쩍 뛰었다. "하지맛!" "……너야말로 무리하지마." "무리같은거……!" "굳이 말로 해야 아는건 아니지. 가끔은 머리를 식힐 필요도 있어." 한슬은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사근사근 타이르는 사혜의 말에 입을 닫고 말았다. 한슬이 조용해지자 사혜는 천천히 골목을 걸어나오며 말했다. "아이스크림이라도 먹으면서 천천히 생각을 정리해보지 않을래?" 한슬은 잠깐 골목 안을 돌아보았다가, 이내 고개를 주억거리며 작게 대답했다. "……응." 사혜는 한슬의 손을 잡아 이끌고 골목을 나오면서, 아까 자신이 보았던 한슬의 위태위태한 느낌이 그저 기우이기를 바랐다. 그런 와중에, 서서히 내리는 저녁노을이 도로를 걸어가는 두 사람의 등에 내려앉아 교복을 노을색으로 물들여가고 있었다. 거리를 감싸는 노을을 바라보며, 나현은 오만상을 찌푸리며 짜증을 냈다. "뭐야, 도대체. 그 꼬꼬마들은? 암튼 요즘 것들은 버릇이라고는 하나 없어." "……거울부터 보고 말하는게 어때." 나현은 옆에서 한마디를 툭 던진 한미를 잡아죽일 것처럼 노려보았지만, 한미는 피곤한 표정으로 머리를 벅벅 긁을 따름이었다. "아무튼 나도 슬슬 강의 준비하러 가야 하는데." "……크윽. 아무튼 필요할 때는 도움이 전혀 안되는군." 한숨을 내쉰 나현은 무심코 한미를 향해 손바닥을 내밀려다가, 움찔, 하고 다시 거둬들였다. 그 모습을 보고 한미는 실소를 흘릴 수 밖에 없었다. "뭐 좀 발견했어?" "글쎄,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정도 수확은… 잠깐." 나현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기 때문에, 하마타면 한미는 나현을 품에 안고 쓰러질 뻔 했다. 한미는 나현의 욕설과 구타가 이어지리라 생각했지만, 나현은 자세만 추스린 후에 턱을 만지작거리면서 생각에 빠져들었다. "이게 아닌데. 조금씩이긴 해도 너무 잘 맞춰진다는 생각이 들어. 난 이 건으로 최소한 며칠 정도는 허탕칠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면 좋은 거 아냐?" "리스크가 없는 리턴은 불길할 따름이야." "……이성파를 자처하는 탐정치고는 기분파로군." 한미의 가시섞인 말에, 나현은 쓴웃음으로 답했다. "뭐, 징크스란 거지." 한미는 알든 모를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골목 근처에 세워두었던 자전거의 록을 풀어서 핸들쪽에 걸었다. "아무튼, 지금부터 할 생각인데?" "일단은 사무실로 가줘. 기분이 안 좋아. 어차피 더 나올것도 없고, 정보가 확실해질 때까지 이쪽은 들리지 않는게 좋겠어." "…뭐. 좋으실대로." 자전거에 올라탄 한미는 뒷자리에 나현이 올라탄 것을 확인하고 페달을 밟았다. "─꽉 붙잡아라!" "─어린애 아니거든!" 노을을 따라 오는 저녁의 어스름을 피해 도망치듯, 한미와 나현을 태운 자전거는 쭉 뻗은 강변의 자전거 도로를 따라 쑥쑥 나아갔다. "2명…이나요?" "네. 형사님 오신 다음에 2명이나요. 누구인지는 아까 말씀드린대로고…… 그런데, 그거 사실대로 말해도 괜찮은 건가요? 일단 형사님 말대로 하긴 했는데 모른다고 하는 편이 낫지 않았으련지……." "아뇨. 아주 잘 해주셨어요. 사건에 협력 감사드립니다." "뭘요.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이네요." "그러면 죄송하지만 이 CCTV비디오 좀 빌려갈게요. 수사에 필요하다고 이미 점장님께 양해를 구했으니까──." "아. 네. 저야 뭐 그냥 알바생인걸요. 마음대로 하세요." "그럼 차후에 뵙죠." "네! 안녕히 가세요!" 그렇다. 깔끔하다. 여기까지는 더할나위가 없이 깔끔하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두개의 비디오 테이프를 집어들고 약간 고민해본다. 어차피 빨리감기로 돌려보는 참고용 테이프일 따름. 그 사이에 약간의 가감이 가해져 같은 장면이 반복된다 해도, 그렇게 쉽게 눈치채지는 못할 것이다. 어차피 반복 확인 작업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일을 맡을 사람은 이미 누구인지 정해져 있다. 얼마든지 방법은 있다. 무엇보다 건드리기 어려운 방식의 자료가 아니라서 다행인가. 조금은 바빠져야 일을 원할히 처리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정의를 수호하는 것도 참으로 힘든 일이다. 정의? 그렇다. 나는 정의를 수호하고 법을 집행하는 경찰관이다. 정확히 말하면 형사이다. 하지만 내가 수호하는 정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그 누군가의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관철하는 것. 그것이 나의 정의다. 반대로 내 앞을 가로막는 것, 나의 장래에 불안이 되는 것, 나의 미래를 위협하는 것. 그 모든 것이 불의다. 이를테면 이 한쪽의 테이프에 담겨져 있는 것은 불의. 그리고 지금부터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정의. 지극히 간단한 일이다. 하지만 불의는 지금 내 손에 들려 있는 것들만이 아니다. 아직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처단해야 할 불의는 넘쳐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는 현실이다. 나는 상념을 접고 내 차에 올라타서 아무도 없는 옆자리에 테이프를 던져놓는다. 무전기의 호출에 적당히 대답하고, 차를 빼서 집 방향으로 돌린다. 서에는 적당히 차가 밀려서 늦었다고 하면 문제는 없다. 자동차의 기어를 바꾸어 넣으면서, 나는 손에 잡히는 묵직한 감촉을 떠올렸다. 지극히 익숙한. 검은. 긴. 그리고 다시 느껴지는, 피의 맛. 그것을 상기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입맛을 다실 따름이었다. 자아. 오늘도 정의를 수호하러 가자. >> 소녀탐정극 제6화 : 격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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