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re is the God?-신은 어디 있는가? (2000/08/13 作)
지금, 하늘에 계신다 해도
도와주시지 않는 우리 아버지의 이름을
아버지의 나라를 섣불리 믿을수 없사오며
아버지의 하늘에서 이룬것은 아버지 하늘의 것이고
땅에서 못 이룬 뜻은 우리들 땅의 것임을, 믿습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를 일흔 번쯤 반복해서 읊어 보시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고통을 더욱 많이 내려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미움 주는 자들을 더더욱 미워하듯이
우리의 더더욱 미워하는 죄를 더, 더더욱 미워하여 주시고
제발 이 모든 우리의 얼어 죽을 사랑을 함부로 평론치 마시고
다만 우리를 언제까지고 그냥 이대로 내버려 둬, 두시겠습니까?
대개 나라의 권세와 영광은 이제 아버지의 것이
아니옵니다(를 일흔 번쯤 반복해서 읊어 보시오)
밤낮없이 주무시고만 계신 아버지시여
아멘.
-박남철. '주기도문. 빌어먹을'-
"으흑흑… 으흑흑…."
구경꾼하나 없이 조용한 하누-라엔의 신성 재판정. 언제나 그랬듯이, 이시간 쯤
되면 그곳에선 통곡이나 흐느낌, 또는 저주나 욕설이 쉼없이 흘러나오기 마련이
었다. 오늘, 하늘이 잔뜩이나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오늘은 젊은 여인의 흐느낌
소리가 흘러나와 하누-라엔의 시내를 감싸고 돌았다. 가게도 이시간 쯤이면 일제
히 문을 닫는다. 또한 의례 합창이나 하듯 시내의 몇 집에서는 통곡이 터져나오
기 마련이었는데, 오늘은 개들하나 짖는법 없이 시내의 집들에선 무거운 침묵만
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것으로 보아, 오늘 재판받는 이는 이곳에는 연고가 없
는 방랑자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어쨌든, 신성재판이란 것은, 평소에는 북적거리
는 도시인 하누-라엔을 정적에 정기적으로 빠트리는 행사임에는 변함이 없었다.
도시의 북적 거림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마음까지.
"네가 신을 믿지 않는 사악한 마녀라는 것을 인정하겠느냐?"
"으흐흑… 흐흑…."
장엄하고 정중한 목소리의 종교재판관의 물음에 여인은 고개를 떨구고 흐느끼기
만을 계속했다. 종교재판관의 주위에 있던 건장한 사제들이 여인이 아무말도 하
지않는 것을 보고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왔다. 그러자 여인의 떨림과 흐느낌이
더욱 심해졌다. 검은 로브의 두 사제들이 여인의 양옆에 서자, 여인은 도저히 참
을수 없다는듯 고개를 쳐들었다.
여인의 얼굴은 본래 아름다웠음이 분명하건만, 피가 엉겨 붙고, 눈물과 콧물이
뒤범벅이 된 지금의 얼굴은, 도저히 아름답다고 말할수 없었다. 원래 맑았을 여
인의 푸른 눈은, 이미 이세상 사람의 그것이 아니었다. 재판관은 다시 엄숙하고
지고한 목소리로 재판정이 떠나가라 외쳤다.
"인정하겠는가!"
이젠 눈물샘마저 말라 버렸는지 흐느낌마저 멈춘 여인은 무겁게, 고개가 천근이
라도 되는 듯, 천천히 들었다 내려 놓았다. 사제들은 그녀의 양팔을 잡아 끌어
재판관을 보고 똑바로 서게 했다. 상당히 젊어보이는 재판관은, 눈에 동정의 빛
따위는 일말도 비치지 않고 엄숙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그대는 인정했다. 서기, 기록하라."
재판관의 옆에 작은 책상에 앉아있던, 들어온지 얼마 안되어 보이는 소년 서기
는 손을 벌벌 떨며 펜에 잉크를 찍어 뭔가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쓰는 손이
너무나 떨려서, 과연 누가 그 글을 알아볼까 심히 의심스러웠다. 그러한 안쓰러
운 모습을 잠시간 지켜보던 재판관은, 고개를 여인쪽으로 돌려 다시 선언했다.
"집행하라. 신의 이름으로."
툭. 쨍그랑! 손을 떨며 글 같지 않은 그림을 그리던 소년 서기는 기어코 잉크
병을떨어트리고 말았다. 잉크는 아주 천천히, 눈처럼 흰 종교재판정의 바닥을
검게 물들여 가고 있었다. 하지만 재판관은 그것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은채 차
갑게 말했다.
"빨리 준비하라."
그러자 여인의 팔을 잡은 검은 로브의 두사제는 몸을 돌려 천천히 여인을 끌
고 가기 시작했다. 아주 느릿느릿. 그리고 다른 몇명의 사제들이 그들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장엄한, 재판정 전체를 울릴만한 송가가 울려 퍼졌
다. 그러나 잠시후, 재판관이 손을 들어 노래를 제지했다.
"그런 자에게 까지 송가를 불러줄필요는 없다."
그러자 다시 침묵이 재판정에 감돌았다.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재판관은 천천히 걸어내려왔다. 계단을 다 내려오고, 바닥에 내려 섰을때,
그의 흰 사제복 자락은 검게 물들어 졌다. 그러나 재판관은 개의치 않고 성
큼성큼 걸어서 다른 사제들의 뒤를 따라 걸어갔다. 그가 걷는 길을 따라 잉
크의 검은 줄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소년 서기는 얼빠진 표정으로 재판관
의 뒤를 바라볼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굵은 나무기둥에 묶여있는 여인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흔들거나 하
지도 않았다. 그나마 눈에 두려움이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아까의 모습과는 달리
무표정했다. 아직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여인이 묶여있는 곳은 예전의'제국'
령 시절때 장터로 쓰이던 곳이었다. 별로 행복하다고는 할수 없었지만, 나름대로
웃음과 여유를 가졌던 그때를 사람들은 그리워 하기도 했다.
특히 이 광장 '아고라'가 처형장으로 쓰이는 오늘같은 날은 더더욱.
"그럼, 불을 붙여라."
결국 여인에겐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 없겠다고 판단한 재판관은 말했다. 사제
들이 불을 붙이기 위해서 우우 몰려갔다. 재판관은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
했다. 불이 타오르는 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 왔다. 타닥. 타닥.
"벗어나라."
재판관은 하마타면 발걸음을 멈출 뻔 했다. 그러나 그는 계속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 네 말대로 난… 마녀다. 진짜 마법사지. 그 만큼 보는 눈은… 있다. 내
가 너에게 해주는 마지막 충고다. 네 자신을… 찾아라."
탁한 여인의 음성은 끊어졌다 이어지기를 반복했다. 아마도 지독히 피오르는 연
기때문일 것이니라. 재판관의 발걸음의 속도는 시종일관 일정했다. 하지만, 그의
로브자락은 걸음을 떼어 놓을때 마다 심하게 떨렸다. 지금 그의 머릿속은 여인이
던진 말 한마디로 가득찼다.
'벗어나라.'
번쩍.
콰광! 콰르릉!
하늘을 찢을 듯한 천둥소리가 천지를 뒤흔들었다. 뒤이어 엄청난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아까부터 얼굴을 찌푸렸던 하늘에선 거침없는 자연의 무자비함이 유
감없이 발휘되고 있었다. 사제들은 혼비백산하여 주변의 집으로 대피했다. 재판
관은 드디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그의 눈으로 쇄도하는 빗방울들 때
문에 제대로 앞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여인이 아직 묶인채 꼼짝하지 않는 것은
어렴풋이 보였다.
혼절했는가? 아니면 죽은 것인가? 그냥 가만히만 있는 것인가?
'네 자신을 찾아라.'
엄청난 빗소리 가운데서도, 그는 여인이 한말을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몸
을 돌려서, 한번도 뒤돌아 보지않고 재판정을 향해 있는 힘껏 달렸다.
번쩍.
콰광! 콰르릉!
그는 방안에서 여전히 그치지 않는 엄청난 폭우를 창문을 통해 가만히 응시하
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편안하고 온화해 보였다. 아니,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
게 보였다. 그는 머릿속에서 계속 울려퍼지는 그 소리와 힘껏 싸우고 있었다.
'벗어나라! 네 자신을 찾아라!'
하지만 싸움은 그에게 체력과 정신력의 소모만을 가져오게 했다. 결국 그는
싸움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악마의 유혹이야. 그렇게 생각하면 속은 편했
다. 그러나 그의 의식과는 달리 그의 의지는 소모뿐인 싸움을 계속했다. 그럴
수록 그가 이제껏 잊고 있던 죄책감이라든가의 감정이, 마구 밀려들었다.
그는 외쳤다.
'제발 그만둬!'
머릿속에서 울리는 소리에게 하는 말인지, 아니면 자신의 의식을 넘어선 의
지를 탓하는 말인지 알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머릿속에 생각으로 만
공허하게 남았다. 말이 되어 나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끄어으 아으아!"
그것은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고통에 차서 짐승이 소리라 생각했을 법한 소리
였다. 그는 생각했다.
'나의 몸도 내 의지대로 할수 없다… 그건가?'
그는 책상을 걷어차려 해 보았다. 그의 의식에서는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
다. 그러나 그의 의지는 그것을 행하지 않았다. 아주 평안한 얼굴로, 침대에
누운 그는, 발버둥 치려 해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오
히려 손으로 고이 이불을 끌어와 덮게 된 그는, 그의 의식과는 상관 없이 닫
혀지는 눈꺼풀엔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나, 의식이 멀어지기 전에 그는 마음속
으로 질문을 하나 던졌다.
'난 누구지?'
그리고 멀어져가는 의식. 그는 잠에, 아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한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은 춥고 배고팠다. 신성국 헤시안에 넘쳐나는 신의
은총이, 신의 손길이 왜 유독 소년에게만 못 미쳤는지는 알길이 없다. 단지 그
소년이 느끼는 거라곤 춥고 배고프다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소년은 착했기때문에, 언제나 무너져 가는 통나무 오두막에서 자기처
럼 떨고있는 어머니를 항상 걱정했다. 그러한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의 이
중고는 소년을 또래아이들 보다 훨씬 성숙하게 했다. 그래서 소년은 언제나 나
무를 하러 갈 때마다, 헤시안의 모든 이들이 믿는 신이란 존재가 과연 있는 것
인가, 하고 심각하게 고민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한 노인이 찾아왔다.
"얘야. 너는 신을 믿느냐?"
누더기로 기운 흰 옷을 입은 노인은, 겨울의 눈속에 파묻히기라도 한다면 아예
보이지도 않을 성 싶었다. 소년은 도끼를 내려 놓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자
신이 매일 고민하던 것이긴 했지만, 신중히 대답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무엇에
라도 홀린듯이 소년의 입에서는 저절로 대답이 튀어나왔다.
"저는 신따위는 믿지 않아요."
소년의 당돌한 대답을 들은 흰 노인은, 고개를 끄떡이고는 소년에게 엉뚱한 것
을 물었다.
"너, 힘들지?"
소년은 또 무의식중에 고개를 끄떡이고 말았다. 노인은 온화한 얼굴로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손을 내밀며 말했다.
"가져가거라."
노인의 손에선 작은 빛의 구가 떠올랐다.노인은 다시한번 말했다.
"네 선택이란다."
소년은 자신이 왜 그 빛에 끌리는지 알수 없었다. 소년의 손은 소년의 생각보
다 또 먼저 움직이고 말았다. 소년은 손을 내밀었고, 그 빛은 소년의 손안으로
빨려 들어왔다. 노인은 빙그레 웃었다. 소년은 섬뜩한 기분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않고 산을 순식간에 내려왔다. 어찌어찌 하다가 마을에 당도한 소년은,나
무를 팔러 장에 나갔다. 어차피 산에 올라간 목적이 그것 이었으니까. 아까 이
상한 노인과의 만남으로 기분이 착잡했지만, 반갑게 맞아주는 마을사람들의 친
절에 그것은 곧 잊혀졌다. 그러나...
"저… 저기!"
소년의 눈에는 이상한 것이 보였다. 한 순박한 시골 처녀에게서, 시커먼 어둠
이, 말로 표현할수는 없지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소년에겐 걷잡을수 없는
추위가 밀려왔다. 주위는 지독히 추워졌다. 소년은 추운것이 정말 싫었다. 소
년은 다짜고짜 곁에 나무를 패던 도끼를 들었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소녀의 목
을 내리쳤다. 소년은 왠지모를 희열을 느꼈다. 피가 흥건히 흘러나와 그의 몸
을 적셨을 때에야, 그는 정신을 차렸다.
'아, 이상한 노인에게서 받은 것이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것이었나 보다. 난
이제 마을 사람들에게서 몰매를 맞고 쫓겨나거나 죽을 테고, 그럼 우리 어머니
는 슬퍼하시고, 돌봐주실 사람도 없이 쓸쓸히 돌아가시겠지. 아아, 불쌍한 우
리 어머니.'
그러나 소년의 걱정과는 달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폭풍 전야의 고요
함일까? 그러나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은 소년을, 경악이 담겨 있지만 존경과
신비가 함께 담긴 눈초리로 우러보고 있었다. 소년은 의아한 생각이 들어 땅바
닥을 바라보았다.
"아… 아!"
분명히 바닥이 피로 흥건히 고여있긴 했지만, 소녀의 머리가 굴러떨어져 있어
야 할곳에는 인간과 비슷하게 생기기는 했지만, 흉측한 괴물의 목이 떨어져 있
었다. 마을사람들 중 하나가 말했다.
"도… 도플갱어!"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외쳤다.
"도… 도플갱어를 저 소년이 잡아냈어."
"마… 맞아! 어… 어떻게?"
"시… 신심깊은 사제들도 못 잡아내는 도플갱어를 어떻게?"
마을 사람들 사이에선 무수한 억측이 난무했다. 그러다 처음 소리질렀던 사람
이 이제야 알겠다는 듯 크게 외쳤다.
"맞아! 신, 신께서 저 아이의 눈에 사악함을 볼수 있는 은총을 내려주신 것이
틀림없어!"
다른 사람들도 맞장구 쳤다.
"맞네! 위대하신 그분의 힘이 아니면 저런 아이가 어떻게 그런 능력을 지니게
되었겠는가?"
"그렇겠군!"
마을사람들은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한 청년이 앞으로 나와서 대표로 소
년에게 물었다.
"아까 무슨일이 있었니?"
소년은 떨리는 목소리로, 산위에서 노인과 있었던 일을 이야기 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소년은 노인과 있었던 대화는 기억하지 못했다. 소년이 느끼
지 못하는 사이에 기억에서 슬그머니 잊혀진 것이었다. 어쨌든, 소년은 이야기
을 모두 마쳤고, 마을사람들은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질문을 했던 청년은,
이제야 모든것이 밝혀진듯한 표정으로 희열에 들떠 소리질렀다.
"분명 그 노인은 신의 사자이셨을 겁니다. 여러분! 이소년은 신으로 부터 선
택 받은 성자인 것입니다. 얘야. 이름이 뭐지?"
"놀… 놀 루젤."
소년이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그 마을 청년은 마치 자신이 고위사제라도 되는
듯 칭호까지 붙여가며 외쳤다.
"루젤! 진실된 눈의 성자 루젤을 찬양하라!"
마을 사람들은 감동과 성자를 친견했다는 기쁨에 들떠 마구 환호해 댔다. 환
호 소리로 작은 마을은 미어터질것만 같았다. 그 순간, 소년은 느꼈다.
'이것은 신께서 내려주신 나의 사명이다. 거부할수도 없고, 달아날수도 없다.
아니, 오히려 기쁘게 받아들여야 한다. 신은 존재하시고, 나는 선택받았으니까!'
이번에도 소년은 그러한 감정을 '느낀'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냥, 막연하게 성
스러운 계시같은 것이라고 추측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소년이 희열에 들뜬 그 순
간, 뭔가가 소년의 마음을 훑고 지나갔다. 아주 아픈것. 고통과... 슬픔?
그러나 그러한 감정은 곧 사라져 갔다. 소년에게선 뭔가가 사라져갔다. 아까의
기억처럼, 소년도 모르게 슬그머니. 그 후로…
소년은 정식 성자로 인정받았고, 헤시안 전역을 돌아다니며, 도플갱어 뿐만아
니라, 사악한. 인간이 아닌 것들이 인간으로 행세하는 모든 존재들을 신의 이름
으로 처벌했다. 처음에는 그는 자부심과 사명감을 강하게 느꼈다. 하지만 나이
가 들어갈수록, 또한 사람들에게 명성을 얻을수록 그에게서 그 신비한 능력은
서서히 옅어져가고 있었다. 그러한 날이 갈수록, 그는 괴로워 했다. 이젠 신의
사명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에게서 그런 능력이 없어진다면, 사람들은 더이상 그
를 성자로 추대하지도, 떠받들지도 않을 것이었다. 다시 나무나 베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는 죽어도 그렇게 되기는 싫었다. 그는 인생의 단맛에, 속세
의 안락에 물들어 버린 것이었다. 그는 한순간 생각했다. 신앙심? 그런게 문제
가 아니야. 난 이 자리를 잃을수 없어. 빌어먹을 신! 왜 능력을 주고 도로...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그는 정신이 퍼뜩 들었다. 아, 이래선 안된다. 신께 저
주를 하다니... 그는 결국 신의 시험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열심히 신께 기도드
리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일년내내 신께 자문을 구하고 혹 범
했을 자신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자문하고, 사죄하고, 기도했다. 그러나 신통치
않았다. 다른 이들은 그저 성자의 신심에 감복할 따름이었지만, 그에게는 절박
한 생명의 끈을 붙잡고 늘어지는 것이나 다름없는 고통이었다. 결국 기도를 드
리기 시작한지 딱 1년째 되는 날, 그는 모든 능력을 잃었다. 그는 그것을 느꼈
다. 그리고 그날밤 아무도 없는 예배당 구석에서 신에게 한참이나 저주를 퍼부
어댔다. 조금의 꺼리낌도 없이, 진심으로. 그러나 그는 지쳐 쓰러져 잠들고 말
았다.
꿈이었다. 예전 자신이 소년이었을때 노인을 만났던 곳과 같은 눈덮인 산이었
다. 그리고 그곳에 노인이 있었다. 똑같은 모습으로. 똑같은 복장으로. 그리고
노인은 처음에도 똑같은 질문을 그에게 던졌다.
"너는 신을 믿느냐?"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이번엔 정말로 신이 시험하기 위해서 보낸 것이구나.
그는 기회를 놓칠수 없었다.
"예, 지금은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불위하신 그분의 존재를 믿습니다."
노인은 또 같은 질문을 했다.
"너, 힘들지?"
그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떡였다. 노인이 그의 머리를 쓰다듬고선
손을 내밀었다.
"가져가거라."
노인의 손에선 그때의 것과 비슷한 빛이 떠올랐다. 그 빛은 그를 더욱 강하
게 끌어당겼다. 그는 앞으로 재빨리 나서며 그 빛을 받아들이려고 했다. 그러
나 이번에 노인은 손으로 그를 제지했다. 노인이 말했다.
"네 선택이다. 다만,"
"……?"
"이것을 받아들이면 사후에 선택권은 없다. 무조건 낙원으로 가는거다. 신
의 대리자가 되는 댓가다. 그래도 받아들이겠느냐?"
그는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그것이 무슨 나쁜 일입니까? 신께서 저에게 사후 천국행을 약속하셨
다는데. 오히려 매우 감사히 여길 일이지요. 능력까지 되돌려 주시고... 저는
신께 제 몸과 영혼을 모두 바칠수 있습니다."
노인은 음울하게 대답했다. 빛을 그에게 건네주며.
"과연 그럴까?"
그는 잠에서 깨어났다. 이번에도 대화내용은 기억하지 못했다. 그가 기억하
는 것은 능력을 '되돌려' 받았다는 것뿐이었다. 그는 기쁨에 가득차서 하루종
일 신을찬양하고 다녔다.
그에겐 오래지 않아, '그 어둠'이 보였다. 그는 기뻤다. 그리고 사제들을 불
러 '그것','사악한 존재'를 처단하게 했다. 물론 '그 존재'는 자신은 인간이라
며 울부짖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이미 '처단'을 하며 숱하게 보아왔던 일이었
기에 그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나..
그 존재는 인간이었다. 사악한 도플갱어도, 뱀파이어도, 그 무엇도 아니었다.
그냥 평범한 인간이었다. 왜지? 도체체 왜야? 처형을 집행했던 사제들도 당황
했다. 이 무슨 괴변이란 말인가? 성자께서 멀쩡한 사람을 치라고 지시하시 다
니?
그는 어릴적 도끼를 들었을 때의 기분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이젠 쫓겨나겠
지. 그리고.. 모두 끝이야!
"저자는 신을 부정한, 살 가치가 없는 자이다. 조사해 보면 알것이니라. 너
희들도 유념해라. 사악한 존재들보다 더욱 경계해야 할 자들이다. 잘 보아두
거라."
사제들은 여전히 의혹을 벗지 못한 표정이었다. 그는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
다.
"신의 뜻이다."
그러자 사제들은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물러났다. 그는 믿을수 없었다. 그의
입에선 그가 '생각치 못한'말들이 마구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는 도대체
자신이 왜 그렇게 말했는지 이해할수 없었다. 무의식중에 잠재해 있던 그의 또
다른 어두운 자아-필사적으로 쫓겨나기를 거부하는- 인가, 아니면… 능력…?
그날 이후로 그는 '이단자'들을 색출해 내어 '신성재판정'에서 처벌했다. 무
자비하게. 처음에는 반대도 많았다. 교구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한번
이라도 그의 재판을 지켜본 사람들은 혀를 휘휘 내두르며 그의 신심과 달변에
재판의 결과에 승복할수 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무고한 사람을 찍
어내는 일은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신이 주신 그의 또다른 재능이었다.
하지만 그는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그가 원한것은 이런게 아니었는데.
그렇지만 그는 거리낌없이 계속 처벌했고 그의 마음이 그의 의지와 동화 되기
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위에서 내려준 신성한 사명감 때문이었으리라. 아
니면 그가 이런 길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든가.
어쨌든 그는 그 이후로 교단에서 위치한 그의 능력을 발휘하여, 전국적으로
무자비한 '이단자 색출'을 지시했다. 그도 물론 성실한 신의 뜻의 실천자 중에
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그가 참관하지 않은 '이단자 색출'신성재판은, 신성은 무차별하게 짓
밟히고 뇌물과 고문, 거짓과 밀고로 얼룩졌다. 그때문에 많은 무고한 피가 흘
러 헤시안의 신성한 대지를 붉게 물들이곤 했다.
그동안 처형방법도 변천했다. 처음엔 '사악한 존재' 들을 처단할 때와 마찬가지
로 소위 '성검'으로 이단자들을 처단했지만 색출되는 자들이 부지기수로 늘어가는
통이라 교수형으로 바뀌었다. 그리하여 마을의 광장들은 '이단자' 들의 목매달린
시체들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함과 동시에 시체썩는 냄새가 풍기곤 하였다.
당시엔 흔히 볼수 있는 풍경이었다.
광기와 같은 색출 중에는, 갖가지 이유가 나붙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처형
되곤 했다. 심지어 사제까지 파문을 당하며 처형당한 일례가 있었으니 그 얼마
나 참혹한 피바람이랴.
그런데 정말 신기한 일은, 소위 '고위사제'란 분들과 그의 인척들은 이 피바람
을 무사히 피해갔다는 것이었다. 단 한명의 사상자도 없이. 대단한 일이었다.
'고위사제'까지 된 분들에게는 신심을 인정해 신이 은총이라도 내려주신 것일까?
알수 없는 일이다. 여하튼 헤시안 전체는암울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막상 모든 일의 원인제공자인 그는 담담했다. 그만큼 신을 믿는다는 의
지였다. 그가 입버릇처럼 달고다니는 말은 항상 이러했다.
「신께선 진정으로 믿는자를 버리시지는 아니하신다」
시간이 흘러, 이단자 처벌의 광기도 시들해졌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처벌되자,
교단은 물론이거니와, 여론과, 지식인들이 모두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
단자 처벌은 공적으로 금지되었다. 그는 반대했지만,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지나치게 많은 피를 흘렸기 때문이었는가... 그러자 그는 또 계시를 받았다.
"마법사와 마녀는 신을 부정하는 사악한 존재들이니 모두 없애야 한다. 이것은
신의 뜻이다."
굳이 신의 뜻이라고 그가 공언할 필요도 없었다. 이번엔 교구에서 그의 말에
대대적으로 찬성했기 때문이었다. 마법사들은 본래 헤시안에선 받아들이지 않았
다. 교리에선 불완전한 자들이라고 가르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신성국이 건립
되기 전에 많이 살고 있던 마법사들을 모두 쫓아낼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마법
사들이 들고 일어선다면 신성국 건립은 물거품이 될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
하여 신성국이 건립되기전에 '성자'들은 마법사들과 일종의 타협을 가졌다. 서
로가 간섭하지 않고, 마법사들은 통제된 거주지에서 조용히만 살아달라는 것이
었다. 그렇다면 안정된 생활은 보장하리라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 헤시안은 마
법사들의 묵인을 받고 건국되었다. 점점 신의 뜻에 따르는 국가들이 많아져 나
라가 커져감에도 마법사들에 대한 방침은 변하지 않았다. 마법사 가문들도 별
다른 일을 일으키지 않고 오랫동안 조용했기에 방침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시간이 흘러가고, 아무리 통제 거주지라고 해도 인간들이 살면서 접촉
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마법사들은 답답한 통제거주지를 벗어나
정체를 숨기고 마을에서 살기도 했다. 어차피 '나는 마법사요' 하고 써붙이고
다니지 않는 이상 마법사란 것이 들통날 일은 거의 없었으니까. 또 시간이 흐
르며 마법사란 것을 알게 된다하여도, 어차피 인척들이 생기고, 마을 사람들과
친숙해진 그들이 배척받지는 않았다. 그저 '눈 감아 주는것' 이었다. 또한 마
법사들은 그 보답으로 마을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마법으로 도와주기도 하여 주
민들에게 호감을 얻고 있었다. 심지어 근래엔 마법사 가문이면서도 사제 칭호
를 받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였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아니었지만.
그런데 이러한 일들이 교구에선 불안요소로 작용하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괜
한 걱정' 이었지만, 사람의 의심과 불안은 끝이 없는 것이었다. 점점 지지세력
이 많아지는 마법사들을 견제하거나 제거할 '꺼리'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
런 '꺼리'를 찾기가 마땅치 않았다. 어쨌든 마법사들은 이렇다할 일을 벌인 것
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성자 루젤이 그들을 처단해야 한다는 발
언을 하는 것이었다. 딱 가려운데를 긁어주는 것이었다. 게다가 '신의 뜻' 이
라는 말까지 넣어가며. 교구, 신성교단에선 이런 천재일우를 놓칠수 없었다.
여하튼 헤시안은 신성국이었으니까. 그들은 그들의 신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
고, 마법사 처단령을 내렸다.
결과는 참혹했다. 통제 거주지에 살던 마법사들은 화형당했다. 불에 타죽은
것이다. 한명씩 처형했다는 소리는 아니다. 마을 전체에 불을 놓은 것이었다.
만약 불을 끄려고 튀어나오는 자라도 있으면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제들에
의해 목이 달아나는 판이었다. 결국, 그렇게 통제 거주지의 마법사들은 몰살
당했다. 다음은 마을에 숨어사는 마법사들의 차례였다. 재판도 필요없었다.
마법사로 밝혀지면 무조건 화형이었다. 화형의 이유는, 마법사의 영혼까지 태
워 복수를 원천 봉쇄함이라고 발표되었지만, 실은 교수형이나 참형 정도로는
경각심을 일으킬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소식이 퍼져 마법사들이 집단적으로 대책을 강구할 시간적 여유도 없
었다. 그만큼 신속하게 즉결처분이 이루어졌다.
역시 '희생자들'은 나왔다. 하지만 별 대책이 있는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마
법사 가문이었던 것을 전혀 몰랐어도 상관 없었다. 처단은 인정이 없었다. 그
런 일이 비일비재 해지자, 마법사들은 드디어 모여서 대책을 토론할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저항다운 '저항'을 할만한 마
법사들이 더이상 남아있지 않게된 것이었다. 결국 그들은 몰살당하기 전에 모
두 자결하는 쪽을 택했다. 이 모든 일의 원인제공자인 성자 루젤의 재판정과
함께. 그러나 그들의 자폭기도는 실패했다. 분명 건물은 흔적도 없이 날아갔
지만, 그때 그 자리에 그는 없었던 것이었다. 신의 도우심이었을까?
어쨌든 그래서 지금 헤시안엔 마법사가 없다.
"재판관님! 루젤 재판관님!"
누군가 그를 흔들어 웠다. 그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비는 그쳐있었다.
그리고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잠들기 전의 고뇌와 쓰라린 기억들은 그의 기
억속에서 스러져갔다. 이것도 신의 도우심인가?
그는 그것에 대해선 별로 신경쓰지 않고 자신을 깨운 사람을 바라보았다.그
소년 서기였다. 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얼마나 잤지?"
"하… 한 열두시간 쯤이요."
그는 따뜻한 눈으로 소년을 잠시 바라보고는 이불을 걷었다. 어차피 옷도
갈아입지 않고 침대에 누웠기 때문에 옷은 로브 그대로 였다. 소년이 부르러
온 이유는 보나마나 뻔했다. 또 재판이겠지. 그는 옷을 또 갈아입을 필요가
없자 마음이 홀가분해 졌다. 그는 소년과 함께 방을 나섰다. 아까의 그 마녀
에 대해서 굳이 물어볼생각은 굳이 들지않았다.
"이번엔 누구지?"
그의 옆에 서있던 사제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이미 끌려나오고 있었기때
문이었다.
"놔아라, 놔아, 이눔들, 이것 노오아라!"
늙은 여인의 목소리였다.얼굴 또한 초췌해 보였다. 그리고... 주저없이 화
형감 이었다. 왠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끌려나온 늙은 여인의 모습
을 보자 그는 무언지 모를 회한을 느꼈다. 가슴 저릿한 그 무엇. 오랫동안 느
끼지 못했던 그것. 늙은 여인은 잡혀 있으면서도 계속 발버둥 쳤다.
"내 아들 내누아라, 이 개애같은 신의 앞잡이 들아! 내아들 내누아..."
그러면서 늙은 여인 눈물을 철철 흘렸다. 그는 다시 가슴속에 아픔을 느꼈다.
있을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 능력을 얻었을때 하고 다시 계시를 받은 이후로
는 이런 감정을 느낀적이 없는데. 아니, 느껴서도 아니되었다. 인정을 느낀다
면 더이상 신의 재판관이라 할수 없었다. 사제가 속삭였다.
"아무래도 미친 여인같습니다. 예전에 이단재판때 아들을 잃었나 봅니다. 어
떻게 할까요? 그냥 살려 줄까요?"
그의 마음속에선 왠지 살려주고 싶다는 마음이 솟구쳤다. 그러나 그의 표정과
입, 말투는 언제나 처럼 차가웠다.
"그대는 신을 인정하는가?"
그는 물었다. 늙은 여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신? 시이인? 그따안 개뼉다구 같은 게 어디있어, 내아들이나빼앗아 가는게
신이여? 그런게 신이면 그런건 있을 필요도 어없어..."
"인정했다. 처형하라."
그의 입에선 너무나 쉽게 말들이 흘러나왔다. 이상하게도 그의 이성과 감정은
그러한 말을 용납한 적이 없었다. 이성과 의지의 불일치가 또다시 일어난 것이
었다. 사제는 의아하다는듯 되물었다.
"아, 원래 미친자는... 게다가 별것아닌..."
"원래부터 신을 부정하지 않았다면 미쳤다고 해도 저런 말을 찌걸일리가 없다.
신성모독죄 이니, 처형하라."
"근신이나 그런것으로..."
"필요없다. 처형해라."
결국 그의 입은 처형이란 단어를 두번이나 입밖에 냈다. 사제는 할수없다는 표
정을 지으며 늙은 여인을 끌고갔다. 늙은 여인은 나갈때까지 조금도 굴하지 않
고 신에게 저주를 퍼부어 댔다. 그는 이상하게도 자꾸만 가슴이 아파왔다. 그는
비틀거리듯 재판정 계단을 내려와 방으로 돌아갔다. 소년 서기가 부축해 주겠다
고 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그리고 방의 침대에 걸터앉고 가슴을 쥐어짰다.
그러다 잠시후. 걷잡을수 없는 허무감이 밀려들었다. 그는 밖을 내다보았다.
화형장에서 연기가 또다시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순간, 그는 쇠망치로 얻어 맞
은 것같은 충격을 느꼈다. 그제서야 알았다. 아니, 생각이 났다.
"엄마...? 어머니!"
그는 창밖을 열고 바라보았다. 여전히 연기는 나고 있었다. 만약 타오르기 시작
할때의 연기라면 희망이 있을 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미 다 꺼져가는 연기였다. 그의 마음 속에서 희망이 날아가고, 그 무언가가
사라지고, 뭔가가 또 다시 되돌아 왔다.
"끄으윽! 으으윽! 끄으어! 으아아!"
그는 괴성을 지르며 방안의 물건들을 차고 두드려 부수기 시작했다. 겉잡을 수
없는 슬픔과 죄책감... 어젯밤 여인의 말이 다시 생생히 기억났다. 그래, 난 내
자신을 찾지 못했어. 지금까지. 난 언젠가 부터 신의 노리개가 되어있었던 것이
야. 스스로를 속박했어. 끄흐흑... 그래서 내 몸도 마음대로 할수 없었고.. 그
것은 결국… 제기랄! 빌어먹을! 망할! 개같은 신, 개뼉다구 같은 신! 결국 신따
위는 없어. 아니, 있긴 하지만 사악한 놈이야. 난 이시간 이후부터 신을 저주한
다. 그 어느 누구보다도. 아니, 나 이외로! 나는 더더욱 저주받아야 할 놈이다.
그러자 몸이 마음대로 움직였다. 그리고 그는 예전에 마음을훑고 갔던 생각의
정체를 알았다. 그것은, 도플갱어에게 당한 소녀의 부모에 대한 마음이었다. 얼
마나 슬퍼했을까.
그제서야 그는 속박에서 풀려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전혀 기쁘다거나 하는
감정은 느끼지 못했다. 단지 마음속에 가득한 것은 회한과 슬픔뿐. 그는 옷장에
서 긴 옷을 하나 집어들고 찍 찢었다. 그리고 천장에 그 긴천을 고정시키기 시
작했다. 그런 일을 하고있는 그의 입가엔 시종일관 냉소가 떠돌았다.
그는 죽었다. 그가 죽자 -그의 죽음은 과로사로 공표되었다- 온 헤시안의 신
민들은 위대한 한명의 성자를 신께서 너무 일찍 데려가셨다고 말하며 그의 죽
음을 심히 애도했다. 그랬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교구까지도.
하지만 그가 일으킨 피바람에 휩쓸려 죽은 자의 인척들은… 과연 애도 했을까?
저주했을까? 그건 여기서 더이상 논할바 아니다. 어차피 그가 죽음으로서 이단
처형의 광기는 가라 앉았으니까.
"됐네. 역시 적중했어. 역시 자살이었겠지?"
"네."
"역시. 그녀석은 이단이라면 어차피 눈에 뵈는게 없으니. 분명 그녀를 처형했
을 꺼야. 하지만 녀석도 인간이다. 결국엔, 죄책감에 시달리다 자살했을 거야.
하. 성자의 죽음을. 아니, 신의 노리개의 사라짐을 애도하세."
"……."
"이제 그만한 피를 흘렸으니 된거야. 더이상은 필요 없어. 신도들은 이단의
무서움을 충분히 느꼈겠지. 마법사들도 제거되었고. 신도들의 마음을 달래고
안정시키는게 지금은 중요한데, 녀석은 여전히 너무 과격했단 말씀야. 어쩔수
없는 일이지."
"……."
"그래도 도움이 꽤나 된 자이니, 천국에 갔기나 빌어줌세."
"갔다해도, 과연…"
삐이걱. 삐이걱.
주변은 출렁이는 은빛 강이었다. 아니, 바다일지도 몰랐다. 여하튼 은빛의 너
른 은빛 물결 가운데 작은 쪽배 한척이 흘러가고 있었다. 노를 젓는 소리 또한
귀에 거슬리지 않고 아름답게 울려 퍼져 더욱 평화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 가
고 있었다. 하늘도 온통 푸르렀다.
그 배엔 두 사람이 타고 있었다. 노를 젓고 있는 노인과, 흰 사제복의 남자.
노인은 흰 머리칼을 휘날리며 굳은 표정으로 노를 젓기만 했다. 흰 사제복의 남
자는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다 잠시후 그는 눈을 번쩍 떴다. 그는 어안이 벙벙
한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노인은 그가 깨어난 것을 깨닫고 노젓는 손을 더 빨
리했다. 그리고 한마디를 던졌다.
"잘 왔네."
평화로운 분위기를 깨트리며 흰 로브의 사내가 냉랭한 미소를 흘렸다.
"큭큭… . 당신은 누군가? 신의 하수인인가? 악마의 하수인인가? 아니, 아무
래도 좋아. 나는 아마 지옥으로 끌려가게 되는 거겠지?"
노인은 별다른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고서 노를 저으며 말했다.
"난 아무쪽도 아니라네. 그냥 뱃사공일 뿐이지. 그리고, 자네는 낙원으로 갈수
밖에 없네. 전에 분명히 말해 뒀을텐데. 후회는 없겠느냐고. 자네는 비웃지 않
았던가."
그의 얼굴이 눈에 띠게 일그러졌다. 사내는 격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 이, 나, 난 신을 부정했어. 그리고 내 국가에 피바람을 일으켜 많은 사
람을 죽였어. 그, 그리고 어… 어머니까지… 제길헐! 난 저주받아야 해! 지옥
으로 가서, 뼈를 깎는 고통을 겪어야 해! 이대로는 영원히 죄책감에 시달릴 거
야. 뭐, 그런데 신의 낙원에 가서 그 얼어죽을 신이나 영원히 보면서… 영생따
윈 필요없어! 날 지옥으로 보내줬!"
하지만 노인은 말없이 노만을 저을 뿐이었다. 그는 뜻모를 괴성을 지르며 노
인을 밀쳐내고 노를 잡았다. 그리고 반대편으로 저으려 했다. 그러나 노는 그
의 뜻을 거부했다. 스스로, 엄청나고 거역할수 없는 힘으로 노는 움직였다. 그
의 힘으로는 역부족 이었다. 그는 소리쳤다.
"끄어으 아으아!"
그의 공허한 목소리는 푸른 하늘과 은빛 물결위에 허무하게 울렸다. 잠시후,
빛이 그 모든것을 감쌌다.
목록으로 돌아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