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꿈. 그리고 갈매기의 꿈 (2000/05/12 作)
----------------------------------------------------------------------------
처얼썩. 쏴아아. 처얼썩. 쏴아아.
파도가 친다.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을 향해 파도들은 우르르 몰려들어 왔다가 산
산히 부서지며 비명을 질러댔다.
"후와아... 정말 크고 넓군요!"
"이게 바다란 곳이네. 난 왠지 친근감이 가는걸."
청년은 배낭을 짊어지고 바다를 휘휘 둘러보며 신기한듯이 탄성을 질러댔다. 청
년의 옆에 걸어오던 중년 사내는 입에 미소를 띠우며 청년의 하는 양을 잠자코
지켜보았다.
"조나단 스승님. 정말 스승님을 따라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여러번들게 되네요."
"으흐음. 플래처. 내가 무슨 스승님인가? 남들이 들으면 내가 무슨 대마법사나
검사라도 되는 줄 알겠네. 언제 자네와 내가 사제 사이라도 맺었나?"
플래처는 조나단의 말을 들으며 백사장위에 벌렁 드러누웠다. 그리고 피식 웃으
며 말했다.
"인생의 스승님이죠."
조나단은 껄껄 웃었다. 그리고 자신의 가방을 열어보이며 말했다.
"허허헛... 인생의 스승이란 자가 도적한테 배낭을 몽땅 털리나? 난 뭐 그리 대
단한 사람도 아니라네."
그가 흔들어 보이는 가방은 텅텅 비어 있었다. 플래처는 낄낄 거리며 자신의 가
방도 털어보였다.
"히힛... 그건 저도 마찬가진데요. 뭐 인생이 도둑맞은 것은 아니잖아요. 생명
도 말이고요. 뭐 겨우..."
그는 아무리 뚫어지게 들어봐도 나올것 없는 가방 안을 뚫어지게 들어보고는 말
했다.
"내일 먹을 양식하고... 또, 잠을 청할 여관을 찾을 돈정도만 잃지 않았습니까?
이정도면 손해라곤 할수 없죠. 녀석들은 우리 목숨은 놔두고 갔잖아요. 그게 어
디에요? 힘도 없는데 괜히 덤볐다 목숨을 잃으면 그건 멍청한 짓이죠. 뭐 옛날이
야기처럼 누군가 불쑥 나타나 구해주는 것도 아닌데..."
조나단은 그의 말을 잠시 잘랐다. 그의 코앞에 빈 가방을 들이대고 흔들며.
"하지만 그게 우리 가진것 전부였지 않나."
"헤헹... 그렇다곤 할수 없죠. 말들과 동침이라도 하면 어때요? 살아있다는 게
행복한거지. 먹을거야 구걸을 해서라도 구하면 되는 거구요..."
그러면서 그는 모래를 손으로 움켜잡아 바다쪽으로 던졌다. 그러나 던져지기 전
에 모래는 그의 손에서 흘러내려 버렸다. 그는 얼굴을 약간 찡그렸다.
"쳇. 우습네요."
조나단은 그의 말에 눈썹을 약간 치켜떴다.
"자네도 그걸 아는구만."
그리고 그도 벌렁 드러누웠다.
하늘은 푸르고 맑았고, 구름이 몇개 두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그 하늘과 구름을
배경으로 갈매기들이 울어 제꼈다. 끼룩... 끼룩...
"어이.. 조나단! 저게 뭐죠? 첨보는 샌데."
조나단은 뭔가 먹을 것을 구할게 없을까 둘러보다 -숲속이라면 먹을 것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을 텐데- 그의 질문을 듣고 하늘을 바라보고 빛나는 태양에 얼
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끄으응... 저건... 아마 갈매기일 걸세."
플래처는 호기심으로 눈을 빛내며 물었다.
"갈매기요?"
조나단은 대답을 해주려다 하마타면 모래사장에서 미끄러져 바다에 빠질뻔 앴다.
그래서 약간 신경질 적으로 말했다.
"어쿠쿠. 그래. 제길! 또 넘어질 뻔했군. 음. 대부분 바닷가에만 산다고 하더군."
"뭘 먹고 살죠?"
"으음냐. 그게... 으허억!"
결국 조나단은 모래사장에 벌렁 드러눕고 말았다. 다행히 바다에 빠지는 불상사
는 면했지만, 그는 상당히불쾌했다.
"에잇! 제기랄. 난 이럴때 내 자신이 후회되네. 편안한 마을에서 아무 걱정근심
없이 그냥 살걸. 내가 왜 이런 미친 짓을 하고 있어야 하나?"
플래처는 그 모습을 보고 잠시 웃음을 흘리고 그를 일으켜세워 주었다.
"헤... 제가 더 하고 싶은 말이네요. 이게 뭔 사서 고생입니까? 하지만, 이길은
조나단 스승님이 원해서 걸어온 길 아녜요? 뭐, 여행자의 길을 굳이 선택한 이유
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조나단은 얼굴에 밝은 표정을 되찾았다.
"하하하... 내가 어렸을 때 이야기 혹시 들어본적 있나?"
플래처는 약간 사악한 미소를 띄웠다.
"글쎄요... 제가 들은 이야기중에 나오는 약간 돌아버린 소년이 스승님이라면
들어본적이 있는것 같은데요."
"푸하하핫... 물론, 자네가 우리마을에 살면서 그 이야길 못 들었을리가 없지.
특히 자네 아버지 사이한 해드림 씨가 말이야. 그 양반 무던히도 날 미워했지.
아마 지금도 날 저주 하고 있을껄?"
플래처는 조나단을 바라보며 웃었다.
"하핫... 저도 그것은 장담할수 있어요. 자신의 귀하고 순진한 아들을 꼬여서
여행에 데려갔다고요. 아버지는 지금쯤 아마 조나단 스승님 얼굴을 벽에 그려놓
고 저주를 퍼붓고 있을걸요?"
"으음. 아까부터 왜 귀가 간지럽나했지. 어이! 사이한 씨! 그만 밥이나 마저 드
시고 저주하시는게 어떻습니까! 여긴 귀후비개가 없다고욧!"
그는 허공에다 대고 소리치고 있는 자신의 스승 조나단 리빙스턴을 보며 싱긋웃
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이야기를 생각했다. 그가 들은 이야기론 조나단은 어릴때
부터 아주 '특이한' 뭔가가 있었다. 물론 머리가 특출나게 좋았다거나, 뭔가를
타고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자신이 꿈 꾸는것은 실현가능성을 가늠해 보지 않
고 무조건 이루려 했다. 그래서 조나단의 부모와 마을사람들은 조나단 때문에 하
루도 편할날이 없었다.
"어어∼ 저기 조나단이 또 뛰어내린다!"
"어이∼ 사이한! 오늘은 자네 차례야!"
"쳇."
"으아아앗!!"
털썩. 어린 조나단은 당시 청년이었던 사이한의 품안으로 안착했다.
"우에엑. 오늘은 꼭 될 줄 알았는데..."
조나단은 얼굴을 찡그렸다. 사이한은 어이가 없었다.
"이녀석! 오늘로 몇번째냐? 니가 무슨 새냐? 날려고 나무에서 뛰어내리게?"
"이힝. 내일은 다른걸 매달고 와야지."
그러면서 조나단은 사이한의 말은 들은둥 마는둥하며 몸을 빼냈다. 그의 품안엔
닭 깃털이 잔뜩 묻어 있었다. 불쌍한 닭들같으니. 하필 조나단 집에 태어나 수모
를 겪다니. 그는 차라리 닭들이 더 가여울 지경이었다. 터덜 터덜 걸어가는 소년
의 등뒤로 불행한 닭들의 깃털이 휘날렸다. 그리고 잠시후 어디선가 비명이 터져
나왔다. 누구의 것인지는 굳이 말할바 없으리라.
플래처는 조용히 눈을 감고 드러누워 있는 조나단을 바라보며 싱긋웃었다. 그는
그 후로도 날겠다는 꿈을 상당기간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그가 포기하게 된것은
18살때 절벽에서 떨어지게 되었을 때였다. 마을사람들이 우루루 몰려갔지만 그는
결국 떨어졌다. 그리고 떨어지며 소리쳤다고 한다.
'난다! 난다구!'
물에 빠져서 죽진 않았지만, 역시 호된 꾸중을 들어야만 했다. 그는 그 이후로
다시는 뛰어내리거나 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너무 호된 꾸중을 들어서인지, 아
니면 이젠 질려서 인지, 그렇지도 않으면 그나마 꿈을 이뤘다 생각해서인지 그건
조나단 말고는 알수 없었다. 어쨌든 그 때 이후로 그는 꿈을 좀더 현실적인(?)것
으로 수정했다. 바로 세계를 돌아다니며 여행하는 것. 단지 문제라면 빠짐없이
모든 도시와 나라들을 여행하겠다는 거창한 꿈이었다. 그것도 거의 도보로. 그는
그것을 하기로 결심한 날부터 여행관련 서적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전세계의 지
도를 구하고, 미지의 지역에 대해서도 열심히 연구하기 시작했다. 여행을 떠날때
를 대비해서 결혼도 하지않고, 착실히 준비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겨버렸다. 플
래처 해드림이라는 옆집 꼬마가 그를 졸졸 따르게 된 것이다. 그 때문에 그의 거
창한 계획은 상당한 차질을 빚고 말았다. 그 꼬마는 진드기처럼 달라 붙었고, 지
금 여행을 같이 떠나 여기까지 이르게 된 것이었다. 플래처 자신도 왜 그랬는지
는 잘 몰랐다. 그냥, 막연히 동경하고 따른 것이었다. 어쩌면 자신도 조나단처럼
되고 싶어서 였는지도 모른다. 그 꿈이 어떤것이든, 한번 세우면 포기하지 않고
그것만을 향해 달려가는 그런 사람. 플래처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렴 어때. 지
금 여기까지 왔는데. 이젠 목표를 향해 달려나가는 수밖에 없지.
끼룩. 끼룩. 끼룩.
갈매기란 새가 우나보다. 끼룩. 끼룩. 으음?
이봐.
"히이익!"
플래처는 벌떡 일어났다. 조나단은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자나본데.그럼 누
가? 잠꼬대인가? 아닌데. 방금전 목소리는 머릿속으로 들려왔는데.
"이봐. 멍청한 인간씨."
이젠 귓속으로 똑똑히 들려왔다. 도대체 누구얏? 그는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어딜 보나. 위야."
플래처는 위를 바라보았다. 뭐야? 위엔 아무도 없는데. 갈매기란 새들밖에...
"그래. 갈매기라구."
하늘위에서 갈매기 한 마리가 빙빙 돌다가 급저공비행을 시작했다. 불시착예정
장소는 플래처가 누워있던 자리였고, 그 때문에 그는 몸을 피해야 만했다.
"이런!"
그러나 불시착 하리라(모래에 처박히리라)생각했던 갈매기는 멋지게 착륙했다.
플래처는 입을 쩍 벌렸다.
"뭘보나. 자네도 날개만 있다면 열심히 연습하면 할 수 있지. 당신네들은 날개
가 없다는게 문제지만. 내 이름은 플래처야."
"나도."
그렇게 대답했다가 플래처는 어이없음을 느끼지 못하는 것에 어이없음을 느꼈
다. 참 웃기네. 갈매기란 생전 처음 보는 새와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는 꼴
이라니. 하지만 그런 감정은 점점 사라져 갔다. 마치 당연한 일인 것처럼.
"그런데 날 왜 불렀지?"
갈매기가 날개를 파닥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플래처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
다. 그리고 말했다.
"왜냐고? 글쎄. 그거야 나도 모르지. 난 그냥 불렀어. 부르고 싶어서."
"그러니까 왜 불렀는데?"
갈매기 플래처는 고개를 까딱거렸다.
"왜냐고? 이유가 뭐가 중요하지? 너희들은 꿈을 꿀때도 이유를 생각하나?"
인간 플래처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그렇게 생각하는 놈도 있다지만, 난 별로 그렇진 않아."
"너희들은 참 이상하군."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리고 플래처들은 고개를 하늘로 향했다. 왜냐고? 그냥. 그런데 인간 플래처
는 하늘을 보고 당혹감을 느꼈다. 뭐야? 또?
"으헥! 조나단 스승님! 위험해요!"
갈매기 플래처는 다시 고개를 까딱거렸다.
"누구에게 하는 말이지?"
조나단은 깨어 있었다. 하늘에서 급강하해온 또 한마리의 갈매기는 아직 누워있
는 조나단의 머리를 약간 스쳐 지나가며 백사장에 멋진 착륙을 했다.
"플래처. 무슨 일이냐?"
플래처는 당혹했다. 누구 말이야? 동시에 말했기 문에 -조나단과 방금 내려온
갈매기가- 누가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알아들을수 없었다.
"음. 갈매기와 대화를 나누던 중인데요. 조나단."
"흠. 인간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인데요. 조나단."
참 재밌는 상황이네. 플래처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생각했다.조나단들은 서로 인
사했다.
"스승님. 이게 무슨 일이죠?"
인간 조나단은 눈을 꿈뻑였다.
"뭐긴 뭐야. 그냥 일이지. 여행을 다니다보면 별일이 다있는 거야."
플래처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구나.
"그런데 비행솜씨가 괜찮으시더군요."
인간 조나단은 갈매기 조나단에게 말했다. 인간 플래처는 웃음을 참을수 없었다.
그렇죠. 스승님. 그렇게 날고 싶어하시더니. 비행기술이 그렇게 부러웠나보죠?
"뭐. 별것 아닙니다." 갈매기 조나단은 겸손의 뜻으로 날개를 두번 쳤다.
"날개만 있다면 누구든지 할 수 있는것이 잖습니까."
그리고 잠시 말을 끊었다.
"단지 관심들이 없어서 안 할 뿐이지."
그리고 그는 하늘의 동포들을 바라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
"저들에게 나는 것은 단지 생존의 문제이니까, 꿈이 없죠."
"하핫. 저희 인간들도 그렇죠. 이 멀쩡한두 다리를 가지고 할일이 얼마나 많은
데, 그저 입이 즐거우면 주머니의 돈을 만지작 거리며 안락한 집의 흔들의자에나
앉아 쉴 생각만 하지요. 우습지 않으십니까?"
"아닙니다. 그건 우스운게 아니죠."
플래처들은 스승의 대화를 잠자코 듣기만 했다. 그래서 조나단은 나는 걸 원했
고, 인간의 차원에서 여행을 원했나?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갈매기 조나단이 물었다. 조나단은 머릴 긁적였다.
"으흠. 뭐라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나는게 꿈이었습니다. 하늘을 자
유로이 날아다니고 싶었죠."
그는 약간 머리를 숙이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한계란게 있었습니다. 인간에겐 인간의 꿈이,"
그는 갈매기들을 바라보고 말했다.
"또 갈매기들은 그들만의 꿈이 있겠죠."
"맞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간이 가진 것으로 꿈을 실현하려 했습니다. 그건 간단했죠."
"잠깐만요. 스승님."
인간 플래처가 제동을 걸었다.
"그런데, 전에 날겠다는 꿈을 한계라고 깨닫게 된게 그 절벽..."
"아닐세. 플래처. 다른 일이 있었지."
"그게 도대체 뭐죠?"
인간 조나단은 의미심장한 미소를지었다.
"자네도 때가 오면 알게 될 걸세. 자넨 또 자네만의 꿈을 따로 찾아가게 되
겠지. 뭐. 우연히 자네와 나의 꿈이 겹쳐져 갈수는 있겠지만, 자넨 자네만의
도달점에 가게 될 걸세. 갈매기와 인간의 꿈이 다르듯이, 인간각자들의 꿈도
다르지."
"그렇습니다."
갈매기들이 부리를 끄떡였다. 그리고 날개를 폈다.
"이젠 각자의 꿈을 향해 날아가야 겠군요. 당신, 인간들은 물론 걸어서."
인간 조나단이 싱긋 웃었다.
"아니. 저희들도 날아갑니다. 꿈을 향해서라면."
그리고 갈매기들은 눈앞에서사라졌다.
"으음... 많이 어두워 졌구만. 플래처. 이젠 가볼까?"
"물론이죠. 꿈을 향해서. 갈매기들이 그런것 처럼."
조나단은 플래처의 말에 의아함을 표현했다.
"뭔 소리야? 자네. 꿈꿨나?"
"음?"
플래처는 약간 놀랐다. 하지만, 곧 아무렇지도 않은것처럼 표정을 풀었다.
"그럴지도 모르죠."
그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수평선의 멋진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갈매기 두 마
리가 급강하와 급상승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는 씨익 웃었다.
"이보게! 잠자리는 해결해야지. 빨리오게!"
플래처는 마지막으로 하늘을 한번 더 바라보았다. 그리고 큰 소리로 외쳤다.
"예엣! 갑니다! 가요오!"
목록으로 돌아간다 |